차창으로 비치는 겨울햇살은 따가왔지만 대구시 북구 매천동에 위치한 북부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전국 최우수 도매법인이 이곳에 있다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썰렁했지만 시멘트건물에 배어있는 사과향기는 코끝을 싱그럽게 했다.(주)대구중앙청과가 최우수평가를 받을수 있게 이끌어낸 주인공 이용우씨(50.대표이사).기골이 장대하거나 시장판의 세월이 얼굴에 새겨져있지나 않을까 했지만 뜻밖에 이씨는 아담하면서도 화사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과거를 돌이켜볼때 이일을 잘했다고 봅니다. 보람을 느낍니다"지난 77년 잘나가던 무역회사직을 그만두고 칠성시장에 첫발을 디딘후 지금,그가 자신의 시장인생 17년을 두고 내리는 평가다.
그는 45년 청주에서 태어나 한양대 공대를 졸업한후 중소무역회사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으나 곧 해방 이후 칠성시장에서 대구청과를 운영해 오던 장인정대용씨(83세)의 권유로 33세때 시장에 첫발을 디딘다.
"전무이사로 들어왔지만 청소부터 하역등 온갖일을 다했어요. 시장판을 모르니까 별수 없었지요"
이씨는 한번 보따리를 싸서 시장판을 떠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흘러 88년에매천동에 도매시장이 들어서면서 오늘날의 그가 있게된 계기가 마련되었다.장인의 그늘에서 독립, 북부농수산물 도매시장에 제1호로 입주한 그는 허허벌판인 매천동에서 처음 일년간은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한다."10년간 고생한 댓가가 이런 껍데기를 주려는 것이었나"라고 장인을 원망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물건이 있어야 사려는 사람이 있고 또 사려는사람이 있어야 물건이 들어오지요"
그러나 직원과 함께 산지를 직접 돌고 오후시간대에 경매를 시도함으로써 극복할수 있었다고 한다.
"산지에서 오이를 따고 묶고 실어와서 팔았고 5-6월에 사우나를 방불케하는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직접 작업도 했습니다"
매천동에서 결정된 가격이 다른곳에 비해 형편없이 낮아 때로는 수박 1트럭에 1백만원 정도씩 돈을 물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털어놓는 가장 어려웠던 일은 91년도에 있었던 '바나나 장려금 사건'.정부가 바나나 수입으로 인한 농가피해를 우려해 중매상들에 돌아가는 1%의판매장려금을 주지 못하게하자 중매인들의 불만이 북부도매시장에서 폭발했다고 한다.
중매인들이 "인간대접 해달라"며 농성을 하고 자신은 공금횡령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는등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어달의 폐업후 회관을 빌려 한판 잔치를 벌여 감정의 앙금을 풀었고 오히려 중매인등과의 결속을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이어 93년에는 농수산부가 실시한 도매법인평가에서 대구중앙청과는 평가항목 5개중 △종합경영관리△산지개발 및 집하노력△경영합리화 등 3개부문에서 최고점을 받는등 전국에서 생산자가 가장 안심하고 물건을 내다 팔수있고가장 효율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가장 모범적인 도매법인이란영예를 안게되었다.
"도매시장이란 생산자가 마음 놓고 물건을 팔수있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장신속하게 연결시켜줄수 있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히는 이씨는 이를 위해 북부도매시장의 공간확보가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했다.그의 부인 정명금씨는 경북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의류직물과를 나왔고 딸 예승양(22세)도 이대 의류직물과 2학년에 재학중이다. 장남 상윤군(24세)은 한국외국어대 정외과 2학년 재학중이다.
부인 정씨는 홀트아동복지회 대구시 회장을 맡고있고 이씨도 80년 이후 대구시 체육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선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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