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33)

나는 욕실문을 연다. 형광등이 꺼져 있다. 스텐드의 희미한 불만 켜져 있다. 방안이 분홍빛으로 어스름하다. 노경주 앞에 소반이 있다. 소주 한병,잔은 쌍이다. 땅콩 봉지가 있다."시우씨, 한 잔 해요"

노경주가 잔에다 술을 친다. 나는 마주보고 꿇어 앉는다. 그녀가 편히 앉으라고 말한다. 그녀가, 건배하며 술잔을 든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반 모금만 마신다. 노경주가 잔을 비워낸다. 종성시 업소에 도착한 날이었다. 신고식을 하던 그날 밤, 나는 반쯤 죽다 살아났다. 불곰형이 화채 그릇에 맥주를 부었다. 양주도 콸콸 섞었다. 나, 기요, 짱구, 쌍침형이 똑같이그 잔을 받았다. 우리는 잭나이프로 손가락을 베었다. 그 피를 세 그릇의 술에 섞었다. 그 술을 단숨에 마셨다. 나는 어지러웠다. 술상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식구들이 천장에 거꾸로 앉아 있었다. 재가 왜 저래, 하는 불곰형의말을 마지막으로 들었다. 나는 의자에서 나동그라졌다. 깨어보니 이튿날 낮이었다.

"술을 못마셔요?"

"예"

노경주가 잔에 술을 친다. 그녀가 두번째 잔을 비워낸다. 나는 땅콩을 먹는다.

"내 나이 몇쯤 되어 보여요?"

나는 가만 있다. 노경주의 나이를 알 수 없다. 다만, 누나같이 여겨진다."새해가 됐으니, 스물 여덟. 아니, 음력이 남았으니 스물일곱. 참으로 고단한 이십대야. 내가 시우씨 누나 맞죠?"

"예"

"자폐나 정박이 나이보다 어려보이긴 하지. 남과 비교 능력이 없으니깐 고민이 없지. 절망도 없어. 고뇌할줄 모르니깐. 그걸 알면 정상이지. 만약 시우씨도 절망을 깨달을 수 있게 되면 그땐 미칠걸. 미치지 않음 자살해 버릴거야. 그대로가 좋아요. 순수하니깐. 순진무구한 아이, 바로 천사가 당신같은 사람이야. 그렇대두 내 나이까지는 안됐을걸"

노경주가 증언부언 읊는다. 나를 보는 안경알 안쪽 눈이 거슴츠레하다. 노경주가 다시 자작으로 술잔을 비워낸다. 땅콩을 먹는다. 소주가 반 병도 못되게 남아 있다.

"여자하구 이런 데 들어와 본 적이 있어요? 여관, 호텔, 그런데?""예"

업소에 있을 때였다. 그때도 겨울이었다. 순옥이와 여관에 간 적이 있었다.어린 순옥이는 술에 너무 취해 있었다. 아무 데나 재워달라고, 그녀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업소 뒷골목 여관이었다. 순옥이는 엄청 토했다. 그방의 오물 청소를 내가 했다. 순옥이는 쓰러졌다. 나는 요를 깔았다. 순옥이는 요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옷을 입은채 한켠에 누웠다. 새우잠을 잤다. 순옥이가 나를 깨웠다. 눈을 뜨니, 창문이 뿌윰했다. 순옥이가이불 속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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