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설-연석회의 둘러싼 정파갈등

북조선민전이 3월25일 남북연석회의를 제안한 이후 북에서는 김구 김규식등남북협상세력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김구의 북행이 연석회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비망록내용은 남북협상세력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던 북한측이 이들의 북행을 기다리며연석회의 개최 일정을 뒤로 늦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렇다면 당시 남한에서 남북협상세력의 동향은 어떠했는가. 김구 및 김규식이 2월16일 남북협상을 제의한 이후 남북협상 준비를 은밀히 추진해오고 있던 남북협상파 인사들은 광범위한 남북협상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 결성을 추진했다. 그 결과, 김구측 세력과 김규식측의 민족자주연맹이 중심이 되어 4월3일 12개 정당을 포함한 1백20개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이로써 남한에서 남북협상세력의통일적 조직이 발족하게 되었다.

이럴 즈음 발표된 북한측의 3월25일자 연석회의 제안은 이들 남북협상세력을한껏 고무시켰다. 그러나 북한측의 정확한 진의를 알 수 없었던 그들은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그 결과 그들은 북한측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두명의연락원을 평양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4월7일 안경근(안경근:김구측 연락원)과 권태양(권태양:김규식측 연락원)등 두 연락원은 평양으로 출발했다. 평양에서 이들이 북한측과 합의한 것은 세가지였다. 일단 시간상 촉박한 4월14일 회의 개막을 연기한다는 것. 회의 참가인원을 확대한다는 것, 회담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남북통일 문제만을 협의한다는 것 등이었다.10일 서울로 귀환한 이들 두 연락원의 보고를 받은 남북협상세력은 이를 두고 다시 논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북행을 둘러싼 김구와 김규식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다. 김구는 일단 북행을 해야 된다는 의견이었고, 김규식은 6개항의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결국 13일 경교장(김구의 숙소)모임에서는 김구의 북행과 김규식의 북행 보류가 결정되었다. 따라서 김구는 북행 준비에 나섰고, 김규식은 자신의 조건을 다시 한번 협의토록 자신의 연락원을 다시 평양으로 파견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한편 남북협상세력이 북행을 둘러싸고 이같이 논의를 거듭할 즈음, 일사분란하게 연석회의 개최를 지지했던 좌파진영은 4월14일 연석회의 개최 예정 일자에 맞춰 북행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4월10일을 전후한 시점에서 좌파진영은 일찌감치 북행에 나서고 있었고, 이에 비해 남북협상세력의 북행은 지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한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북한측은 남북협상세력의 북행을 기다리며 연석회의 일정을 뒤로 늦추고 있었다. 일찍평양에 도착한 백남운은 북한측에 이같은 남한측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고있었다.

정해구(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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