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농부의 한마디

황희정승이 어사때의 일이다. 길을 가다가 잠시 논두렁 위에서 쉬고 있는데,조금 밑에서 황소와 검은소를 앞세우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황어사는 큰소리로 "여보게 농부, 누렁이와 검둥이중 어느 소가 더 잘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일손을 멈추더니 황어사 앞으로 달려와서 귀엣말로 속삭이는 것이었다. "사실 누렁이가 일을 더 잘합니다" "그런데 여보오! 그깟일이 뭣이 그리 대단하다고 여기까지 와서 귀엣말로 한단 말이오!"그러자 농부는 "저 두 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나와 함께 일하는데 누렁이만 칭찬한다면 검둥이는 얼마나 섭섭하게 생각하겠습니까"짐승앞에서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농부의 자상한 배려에 황어사는 크게뉘우쳐 후일 짐승에게조차 허물을 꼬집지 않는 훌륭한 정승이 되었다고 한다.이처럼 무심코 건네는 말 한마디도 중요하다. 특히 남의 허물을 꼬집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어쩌다 만난 사람의 말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지만 나를잘 알고 있는 사람의 한 마디는 결코 쉽사리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본당사목을 맡다보면 식사초대를 받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어느 집이든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는 자식걱정이다.

"신부님, 큰 놈은 누구를 닮았는지 영 농띠입니다. 좀 뭐라 캐주이소, 예"더 심한 경우에는 "너 때문에 못살겠다"느니 "나가 죽어라"는 말까지 예사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부모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황희정승과 소'에 관한 미담을 들려준다. 미물앞에서조차 함부로 말하지 않는 그 사랑과 겸손, 말의 홍수가 심한요즈음에 우리 모두 '농부의 지혜'를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반야월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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