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기의 대구섬유-기득권 뺏긴 메리야스

불과 얼마되지않은 짧은 기간에 '대구섬유'의 자존심에 구멍을 낸 업종이바로 메리야스다.70년대말까지만해도 대구 메리야스는 전국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전국시장의 50%이상을 점유하며 지역섬유업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지금도 지역민들의 귀에익은 상표가 전국을 누볐다.다보탑,지구표,청포도,아폴로,회전의자,백두산,귀공자등 모두 쟁쟁한 전국적인 기업들이었다.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이들중 2~3개업체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뿐대구지역에서 이름이 사라진지 오래다.

대구 메리야스의 몰락은 70년대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기업들의 참여가 시작된 시점이다. 소위 '빅3'으로 불리는 백양, 쌍방울, 태창이 'BYC' '트라이' '빅맨'등 상표를 앞세워 시장질서를 순식간에 바꾸어 버렸다. 현재 팬티, 러닝셔츠등 속옷시장의 90%는 이들 3사가 독점하고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빅3'중 지역기업은 하나도 없다.대구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70년대초만해도 타지역에는 메리야스 공장이 별로 없었다. 대구서문시장은메리야스 도매시장이었다. 이후 타지역에서 공장을 세워도 기술자가 없어 기계고장이 나면 대구업자를 데려다가 수리할 정도로 대구메리야스는 명성을날렸다.

그러나 10여년만에 세력판도는 바뀌었다.

타지역에서 지방정부가 메리야스공장 신설을 지원하고 설비를 확장하는사이대구업계는 자만속에서 '낮잠'을 즐기고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후반들어뒤늦게 정신을 차렸으나이미 너무 '먼 간격'을 절감했다.'빅3'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춰 내의 가격을 대폭 떨어뜨려놓았기 때문이다.할수없이 지역업계는 이들 대기업이 참여하기 어려운 스포츠 웨어나 양말,커튼지쪽으로 주력하고있다.메리야스의 알맹이인 내의시장은 이제 포기할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메리야스는 직물과 달라 제품차별이 심하지않다. 기계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메리야스를 짜기 시작한 대구가 왜 시장을장악하지못했을까. 이에대해 지역업계는 '홍보부재'와 '아이디어 부재'를 솔직히 시인한다.

내의는 컬러풀한 색상과 패션,눈에 띄는 홍보가 제품의 생명인데도 이를 터득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바로 이점은 대구섬유가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그늘이다.

양말업계는 내의업계보다는 조금 형편이 낫다.'동산양말'을 비롯 어린이양말을 생산하는 '송복양말'이 자존심을 지켜주고있으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그동안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된 양말이 올해부터 그 보호막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다. 제직이나 염색처럼 후발개도국의 추격은 당장 심하지않지만 이미 코앞에까지 다가와있음은 부인할수없다. 중국산은 1천원이면 괜찮은 러닝셔츠 3장을 살만큼 국내가격의 3분의1수준이다.이들의 물량공세에 대한 대비책을 서둘러야한다.

국내기업체끼리의 경쟁에서도 '기득권'을 지키기는 커녕 손쉽게 '헤게모니'를 빼앗긴 대구메리야스업계가 이보다 더 험난한 '세계화'의 길을 어떻게 헤쳐나갈것인지 지역경제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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