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폴란드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25년전이다.70년대초 박정희대통령이 소위 '비적성 동구권국가들과의 관계개선정책'을선언한 것이다. 그 당시 유고슬라비아만이 호응함으로써 한국정부는 이 정책에 관심을 잃었었다.
그러나 72년 소련의 브레즈네프서기장이 한국을 국제법으로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하게 되면서 동구사회주의 국가들도 한국의 북방정책에 호응을 보냈고 한국과 폴란드의 국제정치적 관계의 싹도 트기 시작하였다.당시 한국의 북방정책이란 것은 '적대적 협력'정책이었다. 북한과 우호관계인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동구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를 먼저 우호적으로발전시켜 이를 통해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76년부터 시작된 폴란드와 한국의 무역은 간접교역 형태로 양적으로보면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81년까지 5년간 1천7백만달러 수출에 8백만달러수입이 고작이었다. 이유는 폴란드정부의 불안정한 국내문제와 3백5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때문이었다.
그러다 85년 양국의 무역이 직접무역으로 전환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해 85년 한해만도 2천5백40만달러어치의 교역이 이뤄졌다.
한국과 폴란드의 교역은 89년 실질적인 관계로 접어든다. 바웬사의 '연대'(솔리다리노스)가 개혁사업으로 성공하고 그 결과 한국과 폴란드간 정식외교관계가 맺었기 때문이다. 90년 한국과 폴란드간 교역총량은 전년도에 비하여1백76%가 증가해 총2억4백48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92년부터 교역량이 급속히 감소한다. 폴란드정부가 EC 준회원국 가입협정을 체결하면서 서유럽 회원국들에게 특혜관세와 무관세수입 쿼터를 인정, 폴란드가 상대적으로 불리해진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원인이 있었다.산업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업자원을 보장받을수 있는 기술집약적인 상품의 교역으로 전환한 때문이었다.
김연수〈대구대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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