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78)

사내는 검정 파카를 입었다. 낡은 가방을 들었다. 다리를 쩔룩인다. 수염이텁수룩하다. 까치 머리다.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문다. 의자에 털썩 앉는다.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인희 잘 있어?"

"잘 있어요"

인희엄마가 냉랭하게 대답한다. 사내가 주방에 서 있는 나를 본다. 피식 웃는다. 나는 윗몸이 알몸이라 춥다. 부끄럽기도 하다. 골방으로 들어간다."젊은 놈을 꿰찼군. 넌 워낙 그런 년이라 혼잔 못잘 거야"

"남이야"

"소주 한병 줘"

"왜 왔어요? 다신 나타나지 않겠다구 했잖아요"

"술 한병 달라니깐"

"못줘요"

"식당에 술 안팔아?"

주먹으로 탁자 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불속에서 귀를 기울인다."행패 부리러 나타났어요? 안보이니 살만하다 했는데"

주방에서 그릇 달그락대는 소리가 난다. 인희엄마가 술상을 보는 모양이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 사내가 골방으로 덮칠 것 같다. 나는 이불을머리위로 당겨 쓴다.

"나 그새 원양 어선 탔어. 뉴질랜드 남쪽 남극 가까이까지 갔었지""나와 상관없지만, 늦게 철들었나 보셔. 돈푼깨나 쥐었겠는데 왜 그 꼴이오?"

"선상 난동죄로 석달 유치장 살구 나오는 길이야. 다리도 배에서 다쳤어""술 달라니 줍니다만 오늘은 그냥 돌아가요. 그 꼴로 자는 애 깨우지 말구.인희 놀라겠어요. 내일 아침 이발하구 옷이라도 깨끗이 해서 와주든지. 아비없이 키우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 주기 싫어요. 인희한텐 아버지를 훌륭한 신사로 얘기하니깐요"

"훌륭한 신사? 주둥아리는 까져, 사람웃기네, 너 주제에 언제부터 신사 찾았어? 젊은 놈팽이 끌어들여 요분질이나 즐기며 뭐라구, 인희 상처주기 싫다구?"

와장창, 그릇 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인희가 깰것만 같다. 나는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인희아버지가 골방을 덮칠 것 같다. 나는 일어난다.구석에서 홑점퍼를 찾아 입는다.

"깨라. 다 부셔봐!"

인희엄마가 주방 쪽으로 뛰어온다. 골방앞으로 무엇인가 날라와 박살이 난다. 인희아버지가 술병을 던졌음이 분명하다.

"봐요. 여기 명동 그린은행 안쪽, 꽃집 옆 흥부식당이에요. 경찰차 빨리 좀와줘요! 난리가 났어요!"

인희엄마가 전화건다. 목소리가 급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