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길

기억속에 길들이 있다 그 속에는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하교길도 보이고, 명화 '길'속에서 젤소미나가 떠나던 유랑의 길도 보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을 걷는다. 하고많은 길 중에 스스로가 선택한 단하나의 길을 사는것이다.시는 인간에게 영혼의 작은 오솔길을 열어준다. 광활한 광야를 꿈꾸게하고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사후에 사는 사람이어야한다고 했다. 예전에 가난한 시대의 시인들은 밤하늘의 뭇별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시단은 있되 시는 없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젠가 미당이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번듯하게 누워 "내가 미당이오"라고 큰소리 쳤다는데 배짱과 뱃심만 흉내내는 시가 넘쳐난다. 정말이지 감각적 위트와 요설사이로 종횡무진하는 말장난의 시읽기는 고단한 삶의 풍경을 더욱황량하게 한다. 일전에 시인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어느 선배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함께 씁쓸히 웃은 적이 있다. "지금 이 시대는 대가가 없다(아마도미당을 제외하고). 어쩌면 우린 모두 도토리 키재기나 하고 있는건 아닌지모른다"고. 정말이지 허울뿐인 이름석자를 위하여 제 발밑에 생기는 그림자놀이에만 흠뻑 취해 살아온 것은 아닌지….

사월이다. 한번쯤 길을 떠나자. 모든 일에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되 느슨함이 알맞아야 한다고 했다. 거기 긴장과 팽팽하게만 달려온 길의 고삐를조금은 풀어보자. 비록 영광의 월계수관을 쓴 선두주자가 되진 못한다할지라도 또 좀 우회해서 간들 어떠랴.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가 선택한 길의 주인이 되어 걸어갈 때 인생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름답지 않겠는가.

강해림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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