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9년 국전개최 최대이슈

'제1회 국전 개최'(1949년)'민중미술15년:1980~1994년전 국립현대미술관'(1994년) '민전의 본격화'(1978년) 등이 광복후 지금까지 '한국미술 50년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꼽혔다.전문지 '가나아트'가 최근 평론가 33명을 상대로 '1945~1995년 주요 궤적'을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인 30명이 국전 개최를 최대 이슈로지적했다. '민중미술 15년전'은 28표를 얻었으며 민전 개최가 23표를 받았다.

이어 '조선미술건설본부 결성'(45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전'(86년) '서울대 이화여대에 미술학부 창설'(46년) '납 월북 예술인 작품해금'(88년)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 시행'(92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치'(94년) '국전폐지'(81년) '민족미술협의회 결성'(85년) 등이 주요 사건에 선정됐다.문교부 고시 1호로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는 81년 폐지될 때까지30년동안 한국미술을 좌우한 가장 큰 힘이었다. 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그대로 흉내냈다 해서 처음부터 말썽을 빚은 이후 수상자 선정을 놓고 잡음이끊이지 않았으나 화단을 이끌어온 역할 역시 적잖았다. 이같은 틈바구니를뚫고 시작된 민전은 초기엔 활기를 띄었으나 갈수록 정실심사 등 시비가 불거져 색바래졌다.

광복 사흘뒤 곧장 만들어진 조선미술건설본부는 48년 대한미술협회가 결성되기까지 치열하게 벌어졌던 미술계 좌우익 대립의 시초였으며 미술대학 창설은 자생적 미술교육현장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중요하게 평가됐다.'민중미술 15년전'은 '현실과 발언'(80년) 민족미술협의회 창립이후 민족미술진영이 펼쳐온 미술운동을 한자리에 모아 뜨거운 관심과 찬반토의, 일반인관람행렬을 이끌어낸 전시회였다. 87년 6월투쟁의 상징이었던 대형 걸개그림'한열이를 살려내라'를 천정에 달고 시작한 전시회는 "민중미술의 장례식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그간의 성과를 정리해 정부와 일반에 인식시켰다"는긍정적 평가도 받았다.

덕수궁에서 과천으로 신축 이전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에서 과천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던 초창기를 지나 지금은 동양최대의 전시장으로서제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 또 베니스비엔날레 독립관 설치는 광주비엔날레창설, 백남준 비디오아트 등과 함께 우리 미술의 세계화 지표로 꼽혔다.〈이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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