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철거민과 재벌

나는 근래 두개의 뉴스에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철거민 한 사람이 분신을 하였다. 그리고 재벌 한 분이 집권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옹립되었다. 죽은 사람은 거의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에 득의 만면한 웃음 머금은 그 재벌은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때가 5, 6공 시절과는 다르다고 현정부는 자랑스러워하였다. 우리는 바야흐로 '문민정부'가 아니냐고 으=스대었다. 그러나 과거에 흔했던 광경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집없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몸을 불태운다. 그리고돈밖에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떠받들림을 받는다.

-다시 나타난 과거

문민정부는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러나 94년 30대 그룹의 매출액(3백2조8천6백70억원)이 국민총생산의 82.2%에 이르렀다. '재벌공화국'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매출액은 93년보다 17.4% 늘어난 것이고, 비율로는 1.8% 높아진것이다. 그리고 1년 동안 30대 재벌이 거두어들인 순이익은 3조6천억원으로 93년에 비해 무려 1백25%나 증가한 액수다. 이 순이익의 87%는 현대, 삼성, 대우, LG, 선경 등 5대 그룹의몫이다.

소수 재벌이 독주하고 있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사상최고의 부도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정치구호가 난무하는 곳은 대체로 명령·통제가 일상화된 하향식 사회다. 과거의 공산국가들에서는 가지가지의 현수막들이 쉴새없이 나부꼈다. 그러나 권력의 정통성이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정부의 권위에 국민이 자발적으로 승복하기 때문에 요란한선전·선동이 필요없게 된다. 국민이 정부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 수레는 시끄럽다. 정부가 현란한 정치 구호를 찾아 헤매게 된다는 것은 그 정부가 이미 비틀거리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구호'가 갖는 의미는

'세계화'의 구호는 세계적 수준으로의 질적 향상을 위한 다그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세계적 팽창을 위한 무한경쟁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과연 우리 정부는 이 둘가운데 어떤 쪽을 선호하고 있는가 국민의 생활복지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동분서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국가경쟁력을 고양시킨다는 명분으로 꾸준히 재벌의 뒷바라지에만 열중하고 있는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과거 군사정권 밑에서도 지속적으로 늘어온 복지관련 예산의 비중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한다. 국민의 삶의 질을 보살피는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전체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0년대 10년 동안을 포함해 90년 4.2%, 91년과 92년 각각 4.6%로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는 오히려 감소추세를 보여 93년 4.35%, 94년 4.10%였으며, 95년에는 3.96%로 떨어졌다. 복지관련 예산을 다 긁어 모으면 우리나라의 경우 총예산의 6.38%에 이른다. 그러나 스위스(63%), 독일(47%), 영국(46%)에 비해서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후진국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방글라데시(12.3%), 스리랑카(18.6%)에도 훨씬 못미칠 정도니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각종 연금, 수당, 산재보험 등 주요복지제도의 시행상태를 기초로 할 때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수준은 세계 1백22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고서까지 나와 있다.

-복지는 준엄한 의무

사회복지는 국가가 베푸는 적선이나 시혜가 아니다. 준엄한 의무다. '세계화'를 부르짖을 수있을 정도로까지 이 나라를 키우고 보살펴온 국민들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다. 재벌들을 살찌울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 모두를 다 골고루 살찌워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메마른 사람에게 가장 많은 먹을 것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재촉으로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하는재벌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정부는 과연 누구를 돕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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