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지자원년(14)-지역무화육성

지난 4월 6일 오후 7시 경북 김천시 김천문화회관에서는 이 지역 극단인 삼산이수(삼산이수)가 두번째 마련한 연극인 '방황하는 별들'이 공연되고 있었다.대부분이 중·고생인 관객들은 3백60석 좌석을 채우고 간이의자 60개를 더 놓을 정도로 성황을 이뤄 청소년들의 고민과 갈등이 주된 내용인 이 연극에 흠뻑빠져들고 있었다. 변변한 문화 행사 하나 없는 이 지역에도 새로운 지역 문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공연인 셈이었다. 문제는 청소년 뿐만아니라 이 지역의 웬만한 성인층들도 소위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음악회, 연극,무용, 미술전람회등-을 거의 접해보지 못해 왔다는 데 있다. 이 연극을 기획한김종인씨(감문중 교사)는 "상업 대자본을 등에 업은 서울 중심의 문화에 매몰된 지역민들의 의식이 지역의 자생적인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지만 관, 민간단체, 시민이 합심하면 독특한 지역문화를 활짝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북도내 대다수 중소 도시나 주변 농촌의 경우 김천의문화적 여건과 대동소이하다. 1년이 가봤자 문화행사에 대한 향유는 전무한 실정으로 일반 지역민 뿐만 아니라 소수 문화예술인들도 아예 문화의 향수에 대한 의지를 잃은 지 오래다. 막연히 상부나 중앙에서 언젠가 해주겠지하고 의타적 사고에 깊이 침윤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천의 삼산이수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순수히 뜻있는 지역민만으로 힘을 모아 지역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듯이 지역민 스스로가 그 지역에 뿌리박은 여러 문화적 노력들을 펼칠 때 다양한 지역문화가 꽃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제가 이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문화를 탄탄히 받쳐주기 위해선 그만한 노력에 못지 않게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대구시·경북도 할 것 없이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 전체 예산 중 차지하는 비율은 1·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예술 분야는 아예 생색용에 지나지 않으며 이마저도 투자의 우선 순위나 효과적인 배분의 측면에 있어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따라서 지자제의 본격 실시와 관련, 무엇보다 정책 입안자들의 문화에 대한 안목과 인식전환이 긴요한 실정이다. 생활 공간에서 문화가 거세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올바른 지역 문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선 문화정책이 획기적으로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과시적인 대규모 행사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악전고투하고 있는지역의 각 문화단체들이 자생적으로 탄탄히 커나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구 경우 '달구벌 축제'같은 문화행사도 형식상으로는 예총대구시지부가 시의 지원금을 받아 자율적으로 주관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매년 획일적이고 타성화된 전시회나 공연, 연주회등이 되풀이되고 있을뿐이다.

시민축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없는 이런 문화 행사들은 관제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을 담당할만한 전문적 식견과 능력을 가진 전문관료가필요하다. 현재처럼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순환보직제에 따라 문화·공보 분야업무를 맡게 되면 '물먹었다'는 의식이 팽배하고 관행에 따라 무사하게 행사를치러 임기만 무사하게 마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지속되는한 참다운 지역문화의 진흥은 기대할 수 없다. 또 대구·경북 지역만큼 기업들의 문화에 대한 투자가 인색한 곳도 드문데 부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지역 기업은 물론 여타 대기업들도 문화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당연시하는 풍토의 조성이 시급하다. 또 문화전문가들은 문화예술 활동과 관련, 우리 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보수성을 꼽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등 전통 사회의 문화적 유산과 30년간에 이르는 권위주의 정권의 창출지라는 자존심과 연관된 지역정서등으로 자리잡은 특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보수성은 정적이거나 정신적인 활동이 주를 이루는 문학과 미술·서예등이 성하고 동적이고 육체적인 무용이나 연극등은 상대적으로 침체되는 경향을 조장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양헌씨는 이와 관련,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자폐적으로 안일하게 자기 분야에서만 만족할것이 아니라 지역 단위로 광범위한 협조 내지 연대의 틀을 마련해 주체적인 문화생산과 유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지창 교수(영남대·독문학)는 "진정한 지역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선 문화의민주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이것은 자발성과 개인의 창의성에 바탕을 둬야 하며 관이나 매스컴, 재벌등의 일방적 주도로는 이루어 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도환기자〉

**점문가의견**

지자제의 성패가 지역경제의 자립도에 의해 좌우되듯이 지역문화의 활성화도지역문화예산의 확보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문예진흥기금의 지방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전문 문화행정가의 양성과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않는' 문화정책의확립, 여성과 청소년 문화, 노인문화, 진보적 민중문화, 소규모 공동체문화의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소규모 문화시설(공연장, 전시장, 공원,광장등)과 소규모 문화행사(구나, 동단위 마을축제)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의 자발성과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타지역 문화의 개방적 수용과 진보적문화에 대한 관용, 도시와 농촌사이의 문화교류(가령 주말에 농촌에서 순회 공연을 하고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방식)가 좀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공공기관과 기업, 학교, 박물관, 교회, 사찰,향교, 서원등이 지역의 문화 행사를 위해 기꺼이 시설을 제공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다. 또한 시민운동과 주민운동의 차원에서 문화권(문화적 혜택을 누릴 권리)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여 관철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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