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여유 삶의 질

흐드러지게 피었던 진달래, 개나리가 지고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로 접어들고있다. 길가의 은행나무도 두꺼운 껍질을 뚫고 연초록빛 새순을 토해내고, 앞산에는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이 더해지고 있다. 이처럼 산야가 초록빛으로 물들때면 차라리 얕은 우수에 젖게 된다. 모든 생명을 품어 길러내는 어머니인 땅의 대자대비한 심성을 그 초록빛에서 느끼기 때문이다.춘궁기를 겪은 세대들은 어쩌면 이 봄을 가벼운 우수가 아니라 짙은 슬픔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보리가 익을때까지 주린 배를 채우려고 칡뿌리 캐고 소나무 속껍질을 벗기러 온 산을 헤매고 다닌 기억이 가슴 한구석에 아련한 상처로 남아 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도 고도성장을 거듭한 끝에 굶주릴 걱정은 하지 않게 된지이미 오래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삶의 질을 따지게 되었다. 좋은 아파트에살며 좋은 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근사한 곳에서 외식하는 사람을 성공한 가장의 표본으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5천년 민족사에서 운명처럼 짊어졌던 가난을 막 벗어난 때에는 삶의 질을 그런 것에서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물질적 차원에서 삶의 질을 운위할 때는 지나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크게 성장한 시민운동단체들이나 봉사단체들은 우리 사회가지향해야 할 가치를 실현하는 좋은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환경이나 교육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활동하는 단체들도 있고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해 그들을돕는 단체도 있다. 그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여유가 많아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우리가 어울려 사는공동체를 살맛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바로 그러한 일들을 소중한 가치로 여길 수 있을만큼의 여유있는 시점에 온 것이다.

〈영남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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