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이젠 내탓이라 말할때

지난 86년 독립기념관 본관건물이 개관 11일을앞두고 불탔을 때 프랑스인외국어대교수 여동찬씨는 '한국인의 조급성이 자초한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독립기념관 참사 같은 일이 여러번 터질수록 좋다. 그래야만 내가사랑하는 한국인들의 그 조급성과 과시욕을 고쳐줄수있기 때문이다" 여교수는 어느 신문의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공감도 했지만 아울러 자존심도 상했다. 벽안의 이방인이 원하는 대로사고는 계속 일어났지만 한국인의 조급성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오히려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관리능력의 부재는 다음 사고를 부추기고 유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대형사고 연속상연

최근 몇년동안 인재로 기록될만한 대형사고는 삼류극장의 영사기처럼 연속상영되고 있는 중이다. 무궁화호 열차가 넘어져 78명이 숨지고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하여 66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페리호가 침몰하여 2백92명이 사망하고성수대교가 내려앉아 32명이 죽었다. 충주호 유람선이 불타 25명이 불귀의 객이 되고 아현동 가스폭발로 12명이 날아 가버렸다. 사고는 땅에서 하늘로, 바다에서 강과 호수로 마치 신의 음성처럼 들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무소불재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쑤군대고 있었다. 지하철을 가리켰다. 유일한 무사고 지역이었기때문이다. 말이 씨가 된듯 했다. 서울 아현동 가스사고로 땅이 움푹 파였다.급기야는 대구의 지하철 공사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었다. 설명할 수가 없다. 백명의 목숨이 바람에 날리면서 파편에 갈기갈기 찢겨 숨졌다. 부상자들은 몸에서 피가 튀어 나가는 아픔을 참아야했다.

-위험예고 감지못해

연이어 터지는 대형사고는 성장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대가인지도 모른다. 성장에는 반드시 가지치기와 북돋우기를 겸해야 한다. 우린그걸 하지 않았다. 키자라기에만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이다. 약한 바람에도가지가 부러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제 성장을 주저앉히고 뒤를 돌아봐야한다. 큰바람에 뿌리째 뽑히지 않도록 흙을 덮어야 한다.

안전에 대한 무관심과 위험에 대한 둔감, 관리에 대한 무능이 지배하는 사회는 항상 사고의 다발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웃나라들은 우리사회를 거대한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고위험사회(High Risk Society)라고 부른다. 수치스런 일이다. 이런 사회의 특징은 도시전체에 붉은 신호가켜져 있지만 사람들은 푸른신호로 착각하든가 위험예고등을 감지하지 못한다.주한미군의 신병수첩 '웰 컴 투 코리아'에는 △토목·건축현장을 지날때는주의할 것 △대중교통수단은 피할 것 △고가도로는 위험하니 다니지 말것 △난폭운전자가 많으니 조심할 것 △교통상황은 전반적으로 위험함등이 적혀 있다.이것이 한국의 현주소다.

-기울어진 대차대조

더많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는 겸허하게주변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한 선 하나를 긋고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자. 경제발전은 어디까지왔으며 성장의 이름앞에 희생된 대가는 얼마였는지. 아마 산업팽창에 지불한사회적 비용은 턱없이 모자랐을 것이다. 대차대조표 자체가 기울어 있기 때문에 성수대교붕괴·아현동폭발 그리고 대구도시가스참사와 같은 비슷한 수준의세계적 사건이 터지지 않았나 싶다.

10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영국인 스티브 에드워드씨는 이번 사고를 지켜본후 "한국에는 불감증반성운동이 일지 않으면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말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반성할줄 모른다. 사고를 당할때마다 책임을 묻거나 남에게 전가하기를 좋아했지 그것이내탓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내 스스로 자신에게 엄격할줄 아는 조용한 혁명이 일지 않는한 우리는 실패한다. 내탓이라 말해야 한다.

〈본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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