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졸부가 있었다. 자식들에게유산도 골고루 나누어 주고나니 늘그막에 낙이라곤이집 저집 돌며 손주녀석들의 낭랑한 글읽는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그러나 그것도 얼마못가 기력이 달렸다.궁리끝에 집앞 공터에 서당을 짓고 독사장을 초빙, 손주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도록 했다. 한결 편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도 곧 문제가 생겼다. 길손들이 지나치며 서당의 창문이 좁으니,크니, 하는 간여에서 부터 처마가 낮으니, 높으니 하는 등등의 조언을 밥값셈처럼 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어느 졸부의 우화
그때마다 길손들의 이야기가 그럴듯하여 고쳐대기 시작했다. 창문을 넓혔다가 좁혔다가…. 끝끝내 서당은 흉물로 변하고 말았다. 주견머리없이 남의 말만듣고 집을 지으려다가 끝내 망치고 만꼴(도모시용 불궤우성)이 돼 버린 것이다. 그는 낙망하지 않았다. 천하의 대목들을 불러모아 흉해진 서당을 고치는일에 착수했다. 자질구레한 창문틀 고치는데에 몰두할게 아니라 아예 서까래도걷어내고 대들보까지 바꾸어도 좋다며 대목들에게 전권을 위임하다시피 했다.대목들도 이때다 싶어 아예 자재값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1년이나 걸려 멋진도면을 만들어 냈다. 이따금씩 중간보고를 받는 졸부도 흡족해가며 오늘 내일도면이 완성되기만 하면 온천하에 여봐란 듯이 자랑할 마음으로 꽉찼다.그런데 이번엔 진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멋들어진 도면을 만든 것까진 좋았는데 그 비용을 댈 자식이 없는 것이다. 맏이는 맏이대로 내년에 논마지기를더 사야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또 금년 가을 아이가 한명새로 태어나니 살림집을 넓혀야 한다고 둘러대는 판이다.
기가 막힌건 졸부만 아니라 내로라하고 뽐내던 천하의 대목들도 마찬가지였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지 못하며 걸어서는 황하를 못건넌다(불감폭호 불감?하)는 기본상식조차 모른채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대선공약 어디로
꾸민 장황한 이야기에시경구절을 구차하게 끼워넣은 것은 현정부가 전국의석학들을 불러모아 일년여동안 만든 교육개혁안이란 것이 갈팡질팡하고 있기때문이다.
그것도 교육개혁안의 내용 자체보다도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었어야 할 'GNP의 5%'에 대한 계산법을 두고 관계부처간 티격태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GNP의 5%'를 교육재정에 투자하겠다는 것은 김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음은누구나가 알고 있다. 당시 김후보가 92년현재 GNP의 3·8%수준이었던 교육예산을 집권하면 임기중에 5%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기염을 토했던 기억이 유권자들은 지금도 새로운 것이다.
그런데도 재경원과 내무부측은현재 지방재정 지원금과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를 합하면 교육재정이 GNP의 4·32%에 달한다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이는 코앞의 4대 지방선거를 앞두고 '5%공약'을 의식해 짜맞추기식 숫자놀음을하고 있다는 인상밖에 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교육개혁심의위원회나 교육부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5공시절 교개위가 3년6개월이상 전국을 돌며 수십차례의 공청회까지 열어가며 심혈을기울여 만들었던 교육개혁안이 예산뒷받침이 없어 사상누각으로 끝내고 만 웃지못할 희극을 연출한바 있기 때문이다.전철 밟지 말아야
김대통령은 기회있을때마다 국제화·세계화를 강조해왔고 지금은 더 나아가'삶의 질'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GNP의7~8%를 교육재정에 투자하고 있다면 우리는 5%로 확충되어도 뒤따라잡기가 아득한 것이다. 개혁의 또다른 허상으로 치부하기엔 뒷맛이 씁쓰레하기 그지없다고 할까.
〈본사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