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선조들(진유)의 학문전통은 철학, 문학, 역사학을 따로 분리해서 연구하지 않고 함께 다루는 문사철(문·사·철)의 종합학문이 특징이었다.여기에다 실학시대에 이르러서는 농학, 의약, 지리학, 병기, 과학은 물론 요리, 풍속등 일상의 실용적 지식까지 추구하는 백과사전학적 면모가 추가됐다.즉 옳은 선비라면 학문(세상살이)의 이치를 따져 이론체계를 정립하고 거기에 기초해 문학, 역사관을 세우고 실용지식에로 나아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것을 생명으로 삼았다.이같은 학문자세는 서양학문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 문학이면 문학, 과학이면과학 한가지만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학문풍토에선 시대에 뒤떨어진 비전문인으로 판정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국학자들은 문사철을 함께 어우르며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하던 우리 선조들의 학문방법이 서양의 학문이 극도로 세분화, 여러 학문영역을 총괄못해 종합이론을 내세울 수 없는 허점을 메울 수 있는 장점으로 보고,이 장점을 살려 다음세기 세계학문의 정초(정초)를 세우려 노력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특히 국문학자 조동일교수는 자신이 제3세계(개발도상국) 입장에서 마련한이론체계를 바탕으로 제1세계(자본주의)와 제2세계(사회주의)의 장단점을 어우른 세계문학을 다시 써,서구 제1세계 위주로 쓰여진 세계문학사를 바로 잡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철저한 농본주의자로 화폐사용 폐지와 상업활동 억제를 주장했던 성호(성호)도 대표작인 '성호사설'에서 천지문(천지문), 만물문(만물문), 인사문(인사문), 경사문(경사문), 시문문(시문문)으로 나눠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인문과학,사회과학, 자연과학을 통틀어 다루고, '곽우록'에서 그 개혁책을 논했는데, 그가운데서 당쟁의 원인분석과 대책을 다룬 붕당론(붕당론) 뇌물의 명폐를 분석한 논뇌유(논뇌유)는 오늘날에도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으로 돋보인다는게 전문연구가들의 견해다.
국학자들 사이에 명론중의 명론으로 인정받는 붕당론에서 성호는 당파의 원인을 이해(이해)관계에서 출발하고 그 이해가 절실할수록 파쟁은 심해져 결국은 나라를 망치게 된다고 전제, 이를 밥그릇에 비유, 설명했다.그는 배고픈 사람이 열사람인데 밥은 한 그릇 밖에 없다면 밥이 없어지기전에 반드시 싸움은 일어날 것이며 왜 싸우느냐고 물으면 말이 불손했다, 태도가건방졌다거나, 손을 밀쳤다거나 하는등 엉뚱한 이유를 들겠지만 실상은 밥이한 그릇 뿐인데 문제가 있다고 적확하게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붕당은 벼슬자리는 적은데 벼슬할 사람은 많기 때문에 생기는것이다'
정해진 관직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정승 셋에 이조 명조판서등 판서가여섯이고, 각부서의 인사와 처분권을 쥔 전랑(전랑)같은 괜찮은 자리도 극히한정돼 있으니 실권을 잡은 어느 당파라도 내분이 생겨 또다른 당파를 만들게된다.
선조(선조)이래 당파가 둘로 갈리더니 둘이 넷이되고 넷이 다시 여덟으로 갈려 서로 역적으로 모함하며, 한동네 살아도 왕래도 통혼(통혼)도 하지 않을뿐아니라 쓰는 말이나 옷도 서로 모양새를 달리한다.
'일단 당파가 갈리면 국리민복은 뒷전인채 자파(자파)의 이익만이 우선이고자파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 죽는자를 명절(명절)로 내세우니 공정한 입장을취하는 어진이는 설자리가 없게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성호는 이의 타개책으로 인재등용의 방법을 고쳐 문벌이나 당파중심의 정치를 타파하고 관료기구를 개편하는 동시에 생업이 없이 사치한 소비생활을 하는양반들의 생활태도를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관작이나 부귀를 몸에 지니고 나오는 것은 아니며천자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애초에 빈천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양반들도무위도식하지말고 농토로 돌아가생산에 직접 종사해야 한다고 하여 사농합일(사농합일)을 강조했다.
또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도 실제 생업에 종사하는 선비중에서 추천해 뽑는 공거제(공거제)를 과거와 아울러 시행하고, 양반이라고 과거시험 합격이나기다리며 권좌에 빌붙어살아가는 자들(속유)을 없애기 위해 과거시험도 횟수를 줄여 5년에 한번씩 실시하는 한편 시험과목에 조선역사를 포함시킬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벼슬에 오른 사람의 인사도 일정한 원칙없이 당파에 따라 정실에 치우치는 폐단을 없애고 승진도 근무성적에 의거, 적재적소에 배치해 오랫동안유임시킬 것을 강조했다.
성호는 이어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는 또다른 죄악으로 벼슬아치들의 뇌물을 들고 이의 근절을 역설했다.
그는 "뇌물은 우리나라의 오래된 병이다. 나라의 피폐와 백성의 가난함이 모두 여기서 비롯됐는데도 조정에서는 금하지 않을뿐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고있다"며 정부의 잘못을 나무랐다.
성호는 뇌물은 중국에서 사신이 올때, 나라에서 큰 연회나 향연을 베풀때,명절에 각 고을에서 분안차 선물을 보낼때 특히 횡행하는데 그 모두가 백성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중국에서 사신이 올 경우 정부에서는 각 고을에 편지를 띄워 그 경비를떠 맡기면 고을관리들은고관대작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앞다투어 재물을 실어올리는데 모두가 백성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라고 했다.
성호는 이같은 폐단을없애려면 나라의 행사나 잔치비용을 국가재정에서 지출토록하고 실제생활 수준에 못미치는 관리들의 녹봉을 현실화해야 할 것이라고 건의했다.
성호의 붕당론과 뇌물론에 나타난 당시의 실상은 오늘날 정치·공직사회에도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당리당략에 따라 하루아침에 이당저당으로 옮기는가 하면 사흘이 멀다하고불거지는 공직자들의 수뢰사건은 성호 당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성호가 2백50년전 우리나라의 고질병이라고 걱정했던 파쟁과 뇌물이 아직도우리사회의 큰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음을 볼 때 성호의 말처럼 파쟁과 뇌물은 정말 우리의 고질병으로 정착됐는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최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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