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127)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할머니가 '정선아리랑'을 읊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구성졌다. 농사철이면 할머니는 텃밭에서 살았다. 텃밭은 집뒤란에 있었다. 텃밭이 넓었다. 이맘때쯤이면 텃밭에는 파꽃이 핀다. 파꽃은 희다. 탁구공을 닮아 보송하다. 파꽃에도 나비와 벌이찾아온다. 앞마당의 늙은 감나무에는 감꽃이 핀다. 감꽃은 노랗다. 감꽃은 먹을수가 있다. 감꽃은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시애가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시애는 감꽃목걸이를 내 목에도 걸어주었다. 감꽃은 향기가 담백하다. 이맘때쯤, 들로 나가면 민들레꽃이 한창이다. 꽃대를 꺾어 후 불면 꽃가루가 하늘로 날은다. 쬐그만 우산같은 것이 간들거리며 멀리로 날아간다. -풍매화(풍매화)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는다. 바람에 날리는 꽃치고 예쁜 꽃이 없지. 향기도 없구. 어찌보면 풍매화는 꽃이 아니야. 꽃처럼 꽃답지 못하니깐. 왜 그런줄 아니? 나비와 벌한테 애교를 떨 필요가 없거든. 너들이 찾지 않아도 나는 씨앗을 만들수 있어, 하고 말하거든. 들길을 걸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아우라지 나루터에 늘어선 능수버들 갯버들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날이었다. 버드나무 꽃가루는 풀어헤친 실타래나 솜가루 같다. 눈이나 입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된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꽃가루가 말하듯 말하시네. 꽃가루가 벌이나 나비한테 어떻게 말을 해요. 시애가 말했다.-나는 버드나무 꽃가루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난 곤충들을 유혹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렇게나 생겨먹었다구. 그렇게 말하지. 바람에 날려갈 수 있게 가볍고 작으면 될뿐이야, 하고 말하지. 시우 봐, 민들레 꽃가루를 입김으로 불어 날려 보내지 않니? 소나무도 그렇고 벼도 그래. 갈대와 억새도 꽃가루를 바람에 실려 보내지.바람에 날려가서 수분(수분)을 하거든. 자연의 이치란 참으로 오묘하지 않니?풍매화는 충매화(충매화)와 달리나비와 벌이나 개미보다 바람에 이뻐 보이려구 가볍고 작게 꽃을 수십, 수백 개로 뭉쳐 한송이로 만드는 이치가. 아버지가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민들레꽃을 열심히 입김으로 불고 있었다. 작은우산을 자꾸만 바람에 날려보냈다. 재미있었다. 아버지의 말은 어려웠다. 아버지는 시애를 상대로 이야기했다.국시집 옥상으로 돌아오면 기요와 짱구가 잠들어 있다. 나보다도 더러 늦게돌아오는 날도 있다. 둘이 단란주점에 들러 함께 돌아오는 날도 있다. 둘은 늘붙어 다닌다. 나는 잠이 없는 편이다. 하품을 쏟다가도 잠자리에 들면 눈이 말똥해진다. 피곤도 달아난다. 온갖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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