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여름이 오는 길목

여릿여릿 저만치서 여름이 진군해 오고 있다. 산에 들에 푸르름은 갈수록 제빛을 더해가고. 잘난사람 못난사람, 부자건 가난뱅이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모두를 하나같이 녹색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요술쟁이 푸른 숲. 그 숲속에 서면 울긋불긋 꽃이 아니어도 좋다. 그리하여 이 즈음을 가리켜 우리네 선인들은'녹음방초승화시'라 이르지 않았던가. 신록예찬은 따로 뭐랄 것도 없이 여름산에 가보면 안다. 가서 천길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 끝간데까지쉴새없이 발돋움하는 나무를 기리며, 나무의 크고 숱한 잎새와 잎새들이 서로의 어깨를 겯고, 욕심껏 그늘을 드리우며 사는 모습을 보면 안다. 정오의 작열하는 태양도 이 여름숲에선 한갓 도로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여름이 갖는 저리도 아름다운 미덕은 잠시뿐, 우리는 또다시 간 해의여름날을 떠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식을 줄 몰라하던 저 하늘의 태양을 벌써부터 두 눈을 부라리며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상에 무지하고도 선한 사람들을 그 얼마나 지치게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인간과 인간의 고리마저 끊게 하지 않았던가. 올해는 다행히도 예년의 평균기온을 되찾는다 하니, 그것도 닥쳐보아야 알 것 아닌가. 물은 또 그렇다치고 불이 아니면 물이라도 차고 넘쳐 우리의 생계를 위협하고, 정다운 이웃들을 갈라놓게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맹위의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계절이 가고 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무엇을 눈치채게 하려고 조물주는 여름날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주시려 함인가. 나는 습관처럼 저녁상을 물리고 하나뿐인 딸아이와함께 밤하늘 별을 보며 묻는다. 뒤뜰에 아직은 피지않은 도라지꽃에 물어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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