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신여김 살 맛없어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처럼 살맛나지 않는 일이 또 있을까. 자기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자존심이다. 그걸 짓밟히고 유린당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기 마련이다. 개인간에도 그러하거니와 국가간에도 마찬가지다. 옛부터 국지분쟁은 서로가 서로를 업신여기는 데서 비롯되고 전쟁은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기위해 저질러지는 수가 허다했다.
업신여김은 대등한 입장에선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설사 어느 한쪽이 약간 모자라도 자존심이 훼손당할 정도의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힘의 배분율이 1대0·5이하일때, 다시 말하면 밟아도 후환이 별로 두렵지 않을때발생하고 흐지부지 마감된다. 지렁이는 밟혀 죽는 경우가 있지만 독사는 쉽게밟혀 죽지 않는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업신여김을 당하는 쪽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을 겪지만 당장 보복하거나 칼을 갈아 복수하지 못한다. 싸워서 이길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약자가 내놓는 최선의 방편이 사과요구이다. 강자는 자신의 행위가 과했다 싶으면입으로는 사과하는체하지만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다. 그들은 속으로 또다른골려줄 거리를 장만하고 있다. 마치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처럼.
---침략, 자랑으로 생각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아득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우리들의 아버지와 누이들이 식민정책이란 학정에 시달린 그 피해의식만 해도 종종 현기증을 느낀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후 50년동안 과거 한반도를 침략했던 횟수보다 더많이 우리를업신여기는 망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럴때마다 우리정부는 강도높은 사과를 요구했지만 입맛에 딱맞는 사과는 맛보지 못했다.
보복이 뒤따르지 않는 사과요구는 숨어 있는 독이빨이 없기때문에 아무도 겁내지 않는다. '업신여김'이란 수건돌리기 놀이는 계속 맴을 돌고 떨어진 수건을 집어 든 사람들은 "태평양전쟁은 식민지 해방을 위한 것"이라며 약을 올린다. 이것이 전후50년 동안의 '한일이면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솔직히 시인하는 일본의 정치인은 '가뭄의 콩'처럼 드물다. 일본정부의 각료·중의원·참의원 심지어 지방의원의 대다수가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 그들의 선조들이 타국을 침략할 수 있었던 힘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인식에는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침략전쟁이 상대국에 남긴 상처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입은 원폭피해를 더 중시하고 있다. 2차대전이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승리라는 국제사회의 상식이 일본에서만은 통하지 않는다. 내 작은 아픔이 타인의 큰 아픔을 앞지르기 때문이다.
---사과란, 환상 버릴때
독일은 지난해 3월 형법 제130조를 개정, "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없었다"는 요지의 '아우슈비츠의 거짓말'을 한사람에겐 최고 3년징역형에 처하기로했다. 아마 일본이 진정한 속죄의 마음으로 형법을 개정했다면 최근에 망언파동을 몰고온 와타나베전외상을 비롯하여 내로라하는 정객들은 모두 감옥으로갔을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같은 전쟁도발국이지만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빛과 그림자처럼 정반대로 갈라 서 있다. 그것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독일은 철저한 과거반성을 통해 나치독일과의 단절에 성공했지만 일본은 아직도 극우파의 득세로 '대동아공영권'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한 약육강식이란 차원낮은 동물적 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우리는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할때도 있을 것이란 환상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도 더 잦은 업신여김과 망언수모를 당할 대비를 해야한다. 일본 극우파, 역사도 부끄럼도 모르는 정치인들은 계속 기승을 부리며 우리의 자존심을 발기발기 찢어 놓을 것이다. 분노하고 저주하지 말고 우리는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힘외에 다른 길은 없다.
〈본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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