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학16-청담 이중환-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 강조

"이봐요, 청담. 이만하면 한자리 잡아줄 때도 됐지 않소?""무슨 말씀인지?"

"그동안 내가 청담한테 쏟은 공력이 얼만가. 아닌 말로 대국의 사신 받들듯했소이다. 나도 인제 누울 자리를 찾아야하잖소. 청담이 내 영면의 잠자리 하나마련해주구려. 말 나온 김에 우리 선산부터 한번 봐 주구려""가 보겠소!"

"아니, 지금이 몇 점인데 어디를 간단 말요?"

"내 갈곳은 청화산이요"

"청화산이 여기서 몇 리인데 그러시오…"

청담 이중환은 그동안 오진사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가 실은 아무런 사심없는인간성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명당을 얻으려고 던진 저승사자 밥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어달전에 선보인 '소설 택리지'(최범서 지음, 기린원펴냄)의 도입부분이다.이 소설은 대다수 사람들이 조선시대가 남긴 최고 역저중 하나인 '택리지'를 장지(장지)를 쓸때나치산에 필요한 풍수지리서쯤으로 여기는 세태를 꼬집으며 시작한다.

청담 이중환(1690~1752)은 1690년에 태어나서 20대에 과거에 급제, 병조정랑벼슬에 올랐으나 장희빈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던 경종 당시 노론 소론이 첨예하게 대립돼있는 정국에서 '목호룡사건'(김창집등 노론이 경종을 시해하려한다는목호룡의 고발)에 연루돼 절도로 유배됐다가 1727년 10월에 풀려났다. 그러나그해 12월에 다시 탄핵을 받아 먼 곳으로 유배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뛰어난 엘리트였던 그는 불우한 시운에 한탄하지 않고, 전라도와 평안도를 제외한전국을 답사한 끝에 명저 '택리지'를 남겼다.

2백수십년전에 쓰여진 '택리지'는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당한 공간을 추구할뿐 아니라 산업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환경문제와 도덕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마인드'와 '공동체의식'를 담고 있어 오늘날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다.

사민총론, 팔도총론과 각론, 복거총론, 총론의 네부분으로 되어있는 '택리지'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풍수지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나 이는 그의 본의를 표면에 드러나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즉'환경마인드'와 '공동체의식'은 압권이다.

청담은 택리지끝에 '이 글을 넓게 보는 사람은 문자밖에서 저자의 참뜻을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명기, 풍수지리를 바탕에 깔면서도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환경마인드를 강조하고 있다.

청담의 환경마인드는 한마디로 인간과 자연의 균형론이다.

그는 자연이 인간의 생활과 인재배출에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받긴 했지만 결국 교육정도가 높으면 자연환경보다는 사회제도나 규범에 의해서인품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택리지 인심편(복거총론)에서 '우리나라 팔도가운데 평안도는 인심이순후하고, 다음은 경상도로 풍속이 진실하다. 함경도는 지역이 오랑캐와 접하고 있어서 백성이 모두 성질이 굳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백성의 성질이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 백성들인만큼 어리석고 전라도는 간사하여 그른일에 쉽게움직이고, 경기도는 백성의재물이 빈약하고, 충청도는 세도와 이익에만 전념한다'고 팔도인심을 평했다.하지만 이는 서민층을 논한 것일뿐 교육정도가 높고 예를 갖추어 생활할 수 있는 사대부의 풍속은 그렇지않다고 부언, 인간성이 자연환경에 의해 지배된다기보다는 사회제도나 예의규범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었다. 특히 그는 자연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 즉 자연파괴현상을 애석하게 여기고 그에 대한 적응력을 찾고 있다.

'강원도'편을 보면 '운교에서부터 강릉의 서쪽 대관령까지는 평지거나 높은고개이거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나흘동안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수십년 전부터 산과 들이 모두 개간되어서 농경지로 되고, 촌락들이 서로 접하여한치의 수목도 없어졌다. 인삼의 산지는 영서지방의 깊은 두메이었으나 산동들이 화전을 만드느라고 들을 태워 인삼의 산출이 점점 감소하고 매번 장마를 당하면 산이 무너져서 한강에 흘러들어가니 한강물이 점점 얕아진다'면서 인구증가로 인한 토지의 경지화현상을 긍정적으로 기술하면서도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를 경고했다.

'산수론'에서도 '대구에 있는 팔공산은 또한 돌로 된 봉우리가 옆으로 뻗쳐있고, 산의 동쪽과 서쪽에 시냇물과 산이 자못 아름답다. 다만 산 서쪽에 산성을쌓아서 외적을 막는 중요한 진이 되었는데 이것이 아름답지 못한 점이다'고지적, 무질서하게 가하는 인공시설이 자연환경의 조화를 파괴시킨다고 역설했다.개발논리를 앞세워 팔공산 허리를 잘라 순환도로를 뚫고, 무분별하게 상가를 조성하는 자본주의적 발상이 환경적 균형을 깨뜨리고 자연 생태계를 무너뜨려 결국 인간의 최적 생활을 위협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산수승지'에서는 깨끗한 산과 물은 정신을 기쁘게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한다고 설파, 인간생활에서 자연의중요성을 강조했다.

경북대 지리학과 이몽일교수는 "현대화할수록 자연을 존중해주는 선비정신이필요한데 자본주의는 편하고 돈만 앞세우는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면서도시개발에서 청담이 주장한 것과 같은 '환경마인드'를 고려하지않을때 앞으로 20~30년 후에 우리나라도 뉴욕의 슬럼가와 같은 '죽음의 공간'이 나오지않으라는 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지리학자 박영한은 '양란이후 실용 실증정신과 주체적 인식을 바탕에 둔 조선후기 실학사상이 청담의 인문지리사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30여년간전국을 답사한 이중환이 국토와 주민에 애착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한국학의정립을 위해서는 청담의지리사상을 재고찰해야한다고 강조하고, 그의 사상은인간-환경의 관계를 자연과의 조화에 두는 것이라고 요약했다.당쟁의 희생양으로 성리학자이기도 했던 청담은 자신의 고통과 좌절을 딛고당쟁의 기원을 '이조 전랑의 자천제'라는 제도사적으로 규명했으며, '탕평책'의 부작용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탕평책으로 인하여 서로 비방하고 싸우던 분위기는 전에 비하여 다소 줄어들었으나 당쟁이 심하던 때의 나쁜 점에다가 타락하고 게으르고 유약하고 기회나노리는 새로운 병폐가 보태어졌다'고 본 청담은 탕평책이 당쟁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당파끼리 불리한 다툼을 중지하고 이권을 고루배분하자는 편의주의적인 발상임을 비판한 것이다.

너나없이 특정 정파 특정 계층 특정 신념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의식 무의식간에 진실을 왜곡시키는 현대인들에게 도의와 문물을 앞세우는 공동체사회, 개발논리에 밀려 자연파괴를 일삼기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환경마인드를 역설한청담은 21세기 현대사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글 :최미화기자

사진:이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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