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밤 작고한 경주 출신 원로소설가 김동리씨는 40여년간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문단의 '거목'이다.1913년 경주시 성건리에서 김임수씨의 3남으로 태어난 김씨의 본명은 시종,호적명은 창귀이며, 8세때 향리의 제일교회부속학교에 입학한 이후 대구 계성중을 다니다 서울 경신교보로 옮겨 4학년때 중퇴했다. 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되고, 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는가 하면 36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화'가 당선되면서 시인이자 소설가로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초반에는 동인지 시인부락을 통해 시를 발표했으나 36년 '중앙'에 소설 '무녀도'(후에 '을화'로 개작), '신동아'에 '바위', 39년 '문장'에 '황토기'등 동리문학의 요체를 이루는것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해방전까지는 주로 한국인의 운명과 관련된 허무적 색채가 주조를 이루고 해방후의 작품은 인간성의 옹호와 삶의 근원적 의미탐구로 기울어졌다. 샤머니즘의 이름으로 김씨가 추구해온 한국적 주제는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휴머니즘으로 바뀌어 주인공의 성격도 의지적이고 논리적인 경향을 드러내게 됐다.이같은 변모와 함께 김씨는 인간의 구원을 모색해 나가려는 종교적 성향의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기독교적 인간구원의 문제를 다룬 장편 '사반의 십자가', 불교적인 인간해석의 단편 '등신불'등을 들 수 있다.
김씨는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대표인물로서 46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초대회장을 지냈고 6.25가 발발하자 전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구국대부대장으로활약했으며 68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소설뿐 아니라 평론도 써 평론집 '문학과 인간'등을 남긴 그는 논쟁에도 많이 관련, 39~40년에는 유진오씨와 순수논쟁, 48년에는 김동석씨와 문학기능 논쟁, 57년에는 이어녕씨와 문학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신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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