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쌀협상 타결' 의미

남·북한간의 쌀제공 협상이 20일밤 마침내 완전 타결됨으로써 지난해 7월김일성사망후 줄곧 경직돼 왔던 남북한 관계 전반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됐다.비공식적으로는 지난 4일부터, 공식적으로는 지난17일부터 북경에서 열린 이번 쌀제공 협상은 비록 쌀의 제공 경로와 합의문안 작성과정에서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전의 남북협상 패턴으로 볼때는 거의 신기원을 이뤘을 만큼 순조로운 편이었다.

이같은 결과의 배경에는 이번 협상을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새로운 전기로 활용하겠다는 한국측의 배려와 최근들어 이념아닌 실리외교쪽으로 전환기미를 보이는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서로 맞물려 이뤄진 것으로, 향후의 남·북관계가 긍정적으로 발전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협상과정에서도 기왕의 패턴처럼 남·북쌍방이 서로 자기주장만을 앞세워 모처럼 타국에서의 대좌도 하마터면 무위로 돌아갈 위험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선 한국측의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처절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따라 조건없는 식량제공을 이미 선언한터라, 그 어느 대북협상에서보다 인내해야 할 부분이 많았던 것.한국측은 또 쌀제공을 고리로 대북 수교협상에 잔뜩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측에 독자적인 대북 쌀제공의 빌미를 제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어차피 쌀제공을 할 바에는 협상타결을 서둘러 당면한 지방선거의 호재로 이용할 가치도 고려한 것 같다.

반면 북한측으로서는 그 어떤 정치적인 수식에도 불구, 화급한 내부식량사정을 더이상 호도할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까지 몰려 체면불구하고 남쪽쌀을 받을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북한은 현재 거듭된 흉작으로 약3백만t의 쌀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게다가 문제의 심각성은 현재까지 약1백70만섬으로 추정되는 군량미마저 바닥을 보일 상황에 놓여있어 군부내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북한으로서는 또 태국, 이집트, 일본등 남을 상대로 쌀원조를 요구하고 다니면서도 한국쌀은 마냥 싫다고만 하기엔 대의명분으로도 밀릴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80만t으로 예정된 일본쌀을 얻기 위해서도 한국쌀의 수용은 불가피했을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지난해 7월김일성의 사망후 군량미까지 써야할 만큼 식량사정이 급격히 악화된데다 올 들어서부터는 중국에서까지 식량의 무상지원이 완전히 끊긴상황을 맞고있어 곧 닥칠 김일성사망 1주기와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에 때맞춰굶주린 북한주민들에게 제공할 선물이 다급한 처지임은 뻔한 사실이다.어쨌든 이번 협상의 성공배경엔 무엇보다 "먹는 음식을 갖고 다투지 않는다"는 우리 조상 전래의 가르침이 크게 설득력을 지녔으며, 또 연유야 어떻든 이미 기록된 남·북한간의 귀한 대화성공 사례가 향후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한초석이 될지가 한반도의 남·북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국 모두의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북경·최창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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