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엄마일기-나물을 다듬으며

아파트 뜰에서 나물을 캤다.칼씀바귀. 잎사귀 모양과 똑 떨어지는 이름이다. 마치 옛무사가 지니고 다니던 긴 칼같이 생긴 푸성귀이다.

칼이란 이름을 가진 나물을 칼로 파냈다. 뿌리채 먹는 나물이니 캔다고 해도파낸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왼손으로 잎을 잡고 오른손으로 칼을 땅속에 넣어파내다보면 더러는 잎사귀가 다치기도 한다. 그러면 하얀 즙이 수줍게 방울진다. 이 흰즙이 쓴 맛을 내는 성분인데 흰 머리카락이 보이는 나이가 돼서야 쓴맛도 입맛당기는 맛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됐다. 새큼달큼하고 고소한 맛만이입맛 당기는 맛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네 살아가는 일상생활도 입맛과 같은 것일까.

언젠가 흰머리와 주름살이 생겨나는 거울속의 자신을 보고 '늙음'이란 것이 남의 것만이 아닌 나의 것도 된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됐다.누런 잎을 떼내고 흙을 떨구고 세심하게 다듬건만 나물을 다듬다보면 꼭 못쓸 것이 섞여있다. 나물에 붙어있는 검불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몹쓸 언행을 하지나 않는지, 이웃을 헤아리지 못하고 성숙지 못한 오늘을 살고 있지나않은지, 쭉정이의 오만방자로 고개만 꼿꼿이 세우지나 않는지….늙지도 젊지도 않은 아낙네의 두서없는 상념에는 아랑곳없이 음반은 잘도 돌아가고 있다.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물캐는 처녀가 목동과 만난다.(대구시 북구 태전동 롯데아파트 1동 3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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