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쌀배에 인공기 달다니

우리는 몹시 부끄럽다. 굶주린 북한동포에게 줄 쌀을 싣고 떠난 배가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달고 하역작업을 한후 귀항했다니 분통이 터지는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2천t의 쌀을 싣고 북한으로 떠나는 씨 아펙스호를 이홍구국무총리와 3명의장관이 대북쌀지원 첫 출항에 걸맞는 의식을 치른후 많은 주민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배웅했었다. 씨 아펙스호는 마스트에 태극기를 더높이 휘날리며동해의 물살을 가르고 항로를 북으로 잡았으며 국민들은 곧 통일이 올것같은기대감에 한껏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태극기를 달고 씨 아펙스호가 동해항을 벗어난 것은 4대지방선거를염두에 둔 대국민 선전용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배가 청진항 접안시에는 태극기는 물론 인공기를 게양치 않기로 구두로 합의되어 있었다.정부의 대북 쌀지원문제는 북경합의를 지방선거의 호재로 작용시키기 위해너무 서둔 탓으로 오류를 범할수 밖에 없었다. 선상 국기게양문제는 소속 국가의 '주권'을 표시하는 것으로 반드시 문서의 명문화가 필요함에도 선거일전에 합의도출을 이루지못할까봐 이를 구두상으로 합의하고 자질구레한 포대의 국적표시안하기등은 문서화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번 쌀제공에 있어서는 협상및 합의내용을 소상하게 국민들에게밝히지 않았다. 국민들은 씨 아펙스호가 태극기를 달고 동해항을 떠날때까지만해도 운송선의 국기게양에 대해 어떻게 합의했는지 몰랐다. 막연하나마 우리운송선이 북한영해로 들어가면 그들의 체면을 고려해서 국제적십자기로 바꿔 게양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또 국제관례는 외국선박이 다른나라 항구에 입항할때는 자국기는 선미에달고 상대방국기는 중앙에 게양한다. 이것이 국제법의 규정이며 각 나라마다지켜야 될 도리다. 그러나 우리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동포에게 쌀을 무상으로 주는 입장인데다 태극기를 단 배가 북한항구에 버젓이 들어갔을때 그들이 받는 충격과 자존심을 고려하여 양쪽 국기 모두를 게양치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당국은 북경합의문이 항구 관계자들에게 전달되기전에 배가 먼저 도착하여 저질러진 실수라는 변명을 앞세우고 있지만 그것은계산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정부는 28일과 29일 8천t의 쌀을 싣고 북한으로 떠난 돌진호 이스턴벤처호 행진호등 3척의 선박을 회항조치시키는등강경조처로 맞서고 있다.정부는 대북쌀제공문제에 있어서지원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특히 국기게양문제등 중요사안은 뒤늦게라도 명문화된 약속을 받아 낸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베푸는 자의 입지가 이렇게 좁아서야 아니 베푸는 것만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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