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반군(12)-스페인 자유조국 바스크

'떡갈나무아래서 다시한번 독립의 기쁨을!'과거 중세에 바스크지역의 떡갈나무아래서 독립을 선서하고 19세기까지 자치권을 부여받아온 바스크인들의 바람은 언제나 '독립국가건설'이었다.스페인내전을 계기로 한때 실현될 뻔했다 수포로 돌아간 독립의 꿈.유럽에서 그 기원이 명확하지 않은 바스크인들.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유목민후예들인 바스크인들은 피레네산맥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북부와 프랑스남서부에 활동무대를 두고 있다.

'바스크인에 의한 바스크인을 위한 바스크국가건설을!'

3백여만명의 바스크인들을 대신해 올해로 36년째 외길무장독립투쟁을 주도해 온 반군세력이 바로 ETA(자유조국바스크)다.

세계에서 극렬하고 과격한 무장테러단체로도 알려진 ETA는 '독립의 그날까지' 폭력과 테러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ETA는 목적달성을 위해 수도 마드리드에서의 폭탄테러와 군장성과 정치인들에 대한 암살및 테러를 서슴없이 저질러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올들어 지난4월 수도 마드리드에서 97년총선시 차기 총리로 떠오른 야당국민당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당수에 대한 ETA의 승용차폭탄테러가 일어나아스나르등 17명이 다치기도 했다.

특히 지난94년7월에는수도 마드리드중심가에서 차량폭탄테러로 육군중장을 비롯한 3명이 폭사하는등 ETA의 독립투쟁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내전중 프랑코반군에 맞서 공화정부군에 협력,독립을 보장받으려했던 '바스크민족당'의 노력은 프랑코군의 승리로 수포가 됐다.

게다가 프랑코군의 도움을 받은 독일나치에 의해 1937년 바스크분리주의활동중심지인 게르니카폭격으로 2천여명이 살해당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또한 내전이 끝나자 바스크의 풍속과 전통을 금지하고 억제하며 동화정책과 함께 억압정책을 펼친 프랑코독재에 의해 바스크인들의 독립운동이 탄압당했다.

그러기에 독립을 향한 투쟁은 끈질길 수밖에 없었다.

급진적인 청년들은 지난59년 바스크민족당을 이탈해 보다 과격하고 조직적인 단체인 ETA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창설이래 정부요인등 1천여명을 살해한 ETA는 게르니카법에 의해 자체의회와 징세권을 가지는등 어느정도 자치권을 받았으나 최후목표는 독립쟁취인것이다.

테러에 의한 독립을 추구한 ETA는 한때 국제적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다 지난해8월 프랑스에 검거된 '천의 얼굴'의 주인공 '카를로스'의 도움을 받기도했다.

이와함께 ETA는 중도파성향의 바스크인들이 민족주의정당인 바스크국민당(PNV)등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보다 많은 자치권을 확보하려는 것에 반대,무장투쟁을 고집하고 있다.

ETA는 바스크지역을 구성하는 비스케만의 비스카야주와 기푸스코아,알라바주가운데 비스카야의 주도인 빌바오를 사실상 바스크국의 수도로 여기고 있다.

스페인통치에서 벗어나려는 ETA는 자주 국내서 테러를 저지르고는 피레네산맥너머 동포들이이지내는 프랑스쪽 바스크지역으로 도주해 스페인은 물론프랑스까지 괴롭히는 골칫거리인 셈이다.

프랑스쪽 바스크지역의 20여만명의 바스크인들과 인접 나라바주지역의 바스크어사용주민들도 ETA에 적잖은 동조를 하고 있다.

프랑스바스크인들은 ETA가 무기거래및 도피처로 이용되는 것을 돕는등 스페인바스크인들의 투쟁에 소극적이나마 가담하며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지난5월중순 10여명의 스페인의 바스크난민들이 프랑스베이욘느성당에서취업보장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자 이지역 바스크인들이 동조시위를 벌여경찰과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앞서 5월초에는 파리에서 바스크인 수천명이 가두시위를 벌이며 수감중인 바스크행동주의자들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피레네산맥 양쪽의 바스크인들의 독립국가건설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어서 ETA의 테러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정인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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