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생환과 낙천성

기적은 연거푸 우리를 찾아왔다. 지난 9일 아침 崔明錫군에 이어 11일에는柳智丸양이 또 살아나왔다. 폐허속에서도 꽃은 돋아나고 먼지와 땀과 빗물이뒤범벅된 절망의 땅에서도 납덩이같은 한숨을 뚫고 희망의 소식은 전해 오는가. 三豊백화점 콘크리트더미에 갇혀 있다가, 그것도 11일만에 극적으로 살아나온 崔군의 밝은 얼굴은 지상의 어떤 꽃송이보다 더 귀했다. 더구나 그이틀뒤의 柳양은….--삶을 선택한 환희

신문들은 최상의 표현들을 찾느라 정신을 잃어 보였다. '기적의 사나이' '젊은 영웅' '제2의 탄생' '영화 출연요청' '18세의 기적' '건강한 신세대' '자고 일어나보니 상황이 갑자기 변해'…어느 것하나 만족스런게 없으면서 그러나 좋지 않은게 없다. 생환이틀째, 주치의는 좁은 공간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고 말하고,X레이 검진결과 몸에 별 이상이 없고 미음도 잘 소화해 곧 죽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폐쇄공포증 우려는 없느냐는 물음에 그런 걱정은 현재 전혀 없다고 했다. 물음과 대답이 다같이 자신감에 차 있다. 건강이 급속도로 호전되고 있는데 대한 이심전심의 반가움이다.부모직장의 사장들이 찾아와 생환의 축하를 하고 崔군 졸업때까지 학비 전액지원과 취업보장을 약속했으며, 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하자 음료회사에서음료수를 몇상자씩이나 보내왔고 崔군 출신고교에서는 회복되는 대로 모교에들러 '죽음과의 투쟁담'을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병실앞에는 여러 곳에서 보내온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고 TV방송사는 휴먼다큐멘터리로 심층취재해 방영할 준비를 했다. 갑자기 유명인사가 됐다.

--이심전심의 반가움

그러면 무엇이, 드라마 아닌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일까. 첫째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가 결국 삶쪽으로 왔다는 환희이다. 그 죽음과 대면한 공포의 극한 상황에서 조급하게 서둘지 않고 어린이의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을 만큼 천연스럽게, 죽음이나 삶이나 모두 수용하겠다는 그 낙천적 태도가 그에게 삶을 안겨주었을 것이다.崔군은 구조된 직후 "말할 사람이 없는게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다른 사람에게 자기뜻을전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받아들이는게 삶자체인지모른다. 그것이 차단되었을 때 크나큰 고통일 것이다. 그 고통은 죽음의 공포일 수도 있다. 崔군은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고 장난감기차를 만지작거리며 무료함을달랬다고 한다. 또 콘크리트더미에서 흘러나온 빗물로 목을 적시고 종이사과상자를 씹어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고도한다. 柳양은 매몰순간 에스컬레이터와 무너진 콘크리트더미밑 삼각공간에갇혀 구조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새의미

柳양 역시 평소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적극적이고 낙천적 성격을 지녀 몸을잘 움직일 수 없는 삼각공간에서의 '검은 공포'를 참아 낼 수 있었을 것으로믿어진다. 崔군과 柳양의 성격공통점은 '낙천적'이다. 건강한 신세대답게 욕심을 가지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자기변화를 맡기는 점인 듯하다.'욕망에서 슬픔은 오고 욕망에서 두려움은 온다. 욕망에서 벗어난 이에겐슬픔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즐거움에서 슬픔은 오고 즐거움에서두려움이 온다.즐거움에서 벗어난 이에겐 슬픔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두 신세대의 생환은 2백명의 희생자에 대한 비탄에 젖은 우리에게 큰 감동인 것이다.

〈이정훈 本社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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