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18수사 이모저모

지난해 5월13일 정동년 '광주 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등 광주사태피해자 3백22명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등 35명을 내란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이후 국민의 비상한 관심속에 진행된 5.18사건 수사 결과가 18일 발표됐다.이번 사건은 피고소.피고발인 58명을 포함 해 참고인등 조사인원만 2백80여명에 이르며 진술조서와 참고자료등 수사기록만도 10만여쪽에 라면상자 4백여개 분량에 달하는등 사상유례없는 초대형 수사였다.

그러나 이같은 수사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고소.고발인 전원에게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림으로써 광주사태 피해자와 대다수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동시에 향후 정국의 새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이날 수사결과를 발표한 서울지검 청사 6층 소회의실에는 내외신 기자1백여명이 몰려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여 이 사건에 쏠린 국내외의 높은 관심을 반영.

수사팀을 대표해 발표를 맡은 서울지검 한부환 1차장 검사는 2백20여쪽의발표문을 모두 읽지 않고 별도로 만든 30여쪽 분량의 발췌문을 읽어 수사결과 발표에는 30여분이 소요.

2백20여쪽의 발표문은 수사착수 경위와 사실관계로 앞부분 1백50여쪽을 할애한뒤 이에 따른 법률적 판단과 사유 및 주문(30여쪽),논란이 돼온 쟁점사항 20여개중 수사결과 확인된 사실(30여쪽) 등으로 구성돼 있다.한편 검찰은 피고소.고발인 58명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예견한 듯 사실관계및 주문으로 결정 이유에 대해 발표문의 대부분을 할애한 데 이어 일문일답 과정에서도 자세히 설명.

…이번 사건은 조사인원과 수사기록면에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12.12'사건기록을 능가하는 최대규모를 기록.

우선 인원면에서 12.12사건때는 고소인측,참고인,피고소인측 등 모두 1백51명이 조사를 받았으나5.18 사건에는 고소.고발인 1만여명중 대표격인 정동년씨와 김상근목사등 4명,참고인 2백20여명,피고소.고발인 58명등 모두 조사인원이 2백80여명에 이른다.

한편 피고소.고발인 58명과 참고인 2백20여명이 대부분 전현직 군인들로 4성장군부터 일반 사병에이르기까지 한꺼번에 군관련 인사들이 이렇게 많이조사받기도 유사이래 최대라고 수사관계자가 전언.

또 수사기록도 12.12 사건때는 1만6천여쪽에 불과했으나 이번사건은 2백80여명의 진술조서와 국회 청문회 속기록등 10만여쪽(라면상자로 4백여상자)으로 12.12 기록의 6배 정도.

이 때문에 10만여쪽의수사기록에 대해 일련번호를 매기고 일일이 도장을찍는데만도 일주일 이상 걸렸다고.

…대검공안부는 검찰의 공식수사결과 발표가 있기전인 지난 6일께 '검찰,5.18 무혐의처리 '등 불기소 처분 방침이 일제히 언론에 보도되자 "공식 발표도 있기전에 이럴 수가 있느냐"며 언론을 원망.

검찰은 또 보도직후 "일부 언론은 '무혐의'로, 일부 언론은 '공소권 없음'으로 보도되는데 어느것이 맞느냐"며 정치권과 언론,시민등 각계로부터 문의전화가 쇄도하자 "답변할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해 달라"며 보안유지에 곤욕.특히 야권및 재야단체등에서 언론보도 직후 검찰의 불기소 처분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즉각 기소'를 촉구한데 이어 5.18 관련단체와 남총련 학생등이상경, 시위를 벌이자 "발표전부터 이렇게 야단법석인데 정작 공식발표를 하면 정국이 한바탕 태풍을 맞게 되는 것 아니냐"며 근심스런 표정.…서울지검 수사팀은공휴일인 17일에도 전원출근,수사 결과 발표문을점검하는등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

이들은 특히 그간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온 수사진행 상황과 최종결정문 내용이 발표이전에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신경을곤두세우기도.

수사팀은 "공식 발표 전에 내용이 유출돼 근거없는 비판과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발표직전까지 보안을 유지, 막판까지 '공소권없음'과 '혐의없음' 추측이 엇갈리기도.

…성수대교 붕괴참사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29일 12.12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데 이어 이번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에 대한 수습이 진행중인 18일 5.18 사건의 수사결과가 발표되는 등 대형참사 수사와 대형 공안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연거푸 맞물리는 묘한 형국.

특히 이번 사건의 수사 발표는 5.18사건 속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포함되는등 이 사건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김씨의 신당창당 선언일과도 묘하게 일치해 수사발표일 택일과 관련, 갖가지 추측이 난무.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은 일부 전직 각료들과 보안사 핵심인사들은 신문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결재하고 처리한 사안에 대해서조차 "잘 모른다","결재는 했으나기억이 나지않는다"며 불성실한 답변을 늘어놓다 수사검사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아 망신을 당한 일이 빈번했다는 후문.

한 전직 장관이 5.17 비상계엄확대조치가 국무회의를 통과했을 당시의 발언에 대한 진위여부를 묻는 신문에서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계속 발뺌하자 담당검사가 "그토록 중요한 국정사항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발언이 생각나지않는다면 누가 당신을 국사를 논하는 장관이라 믿을수 있겠느냐"고 노골적으로 질책.

이 수사검사는 "다른 일은 잘 기억하면서 이번 사건과 직접 연관된 미묘한질문만 나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떠는 경우가 많아 수사에 애로가 많았다"며 "중책을 역임했던 사람이라면 그만큼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도 있어야 할 텐데 '함량미달 각료'가 너무 많아 실망도 컸다"고 토로.…이 사건 주임검사인 장윤석부장검사는 지난번 12.12 사건 수사에서도주임검사를 맡는등 한국 현대사에 있어 최대의 사건인 두 사건과는 떼려야뗄 수 없는묘한 인연.

그동안 2차례의 검찰 정기인사에서 지방검찰청의 차장검사로 승진했어야할 장부장검사는 12.12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는 악연(?) 때문에 "12.12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번 사건도 마무리하라"는 검찰 수뇌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장부장검사는 "79년 10.26사건이후 80년 8월 전두환씨가 정권을 장악하기까지의 격변기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다른어느 누가 이 사건을 맡는다해도 이만큼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부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언급.

…장부장검사를 비롯한 이 사건 수사팀은 지난 2월1일부터 '특별야근체제'에 돌입, 6개월째 매일 밤 11시~12시 사이에 귀가하는 등 강행군을 해왔다고.

이 때문에 수사팀의 가족들도 밤늦은 귀가에 익숙해져 어쩌다 수사팀들이밤10시30분에만 귀가해도 "웬일로 이렇게 일찍 오느냐"며 의아해 했다는 것.한편 김도언검찰총장과 송종의대검차장, 안강민 대검 공안부장등 검찰수뇌부들도 최영광 서울지검장, 한부환서울지검 1차장, 장윤석 공안 1부장등과함께 지난 6월초부터 매주 토요일 대검청사 소회의실에 모여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며 수사결론과 관련한 회의를 강행해 왔다는 후문.…결정문 작성에 돌입한 6월말을 전후해 대검 수뇌부와 서울지검 수사팀사이에 '혐의없음' 결정과 '공소권 없음' 결정을 놓고 팽팽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후문.

수사팀인 서울지검은 "수사결과 국헌을 문란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볼만한 근거가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수사초기 '수사착수 여부'에 대한법률검토 과정에서 수사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만큼 '공소권 없음' 결정은 내릴 수 없다"는 실무진의 의견을 강력히 개진했다고.

이에 반해 대검 수뇌부는 "당시의 상황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서 검찰이수사권을 발동하기에 부적절한 사안이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며 '공소권없음' 결정이 당연하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시했다는 것.…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이 발표된 후 개각과 함께 검찰 수뇌부에 대해서도 예정에 없던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

즉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리든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든 검찰의불기소처분에 대해 국민의 법감정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여론무마용의 인사가 필연적으로 있지 않겠느냐는게 추측의 근원.또 지자제 선거는 물론 삼풍백화점 참사와 관련한 문책성 인사가 없었다는점을 감안할 때 검찰 수뇌부에 대한 인사와 함께 상당폭의 개각도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매우 비중있게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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