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20사단 증원=20사단 61연대는 새벽 4시,사단사령부와 62연대는 오전 8시50분 광주 송정리역에 각각 도착했다. 오전 8시 광주에 도착한 20사단 지휘차량 인솔대는 광주공단 입구에서 수백명의 시위대로부터 화염병공격을 받고지프 14대를 탈취당했고 2명이 부상했다.
오전 9시 20사단 지휘차량을 타고온 시위대와 고속버스 5대를 타고온 시위대가 아세아자동차공장을 점거하고 장갑차 4대와 버스 등 차량 56대를 탈취,광주시내로 진출했다.
▲계엄군조치=윤흥정 전교사사령관이 체신부장관으로 내정됨에 따라 소준열육군종합행정학교장이 오전 10시 사령관에 취임했고 오후 4시 2개 공수여단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31사단장으로부터 전교사령관으로 전환됐다.▲전남대앞 시위=오전10시 전남대 정문앞과 후문에 각각 4만여명과 1만여명의 시위대가 집결, 3공수여단과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시위대가 무기를 탈취, 무장했다는 첩보가 전파되자 13대대 중대장이상 장교들에게 위급한 상황에서 지휘계통의 명령에 따라서만 사용하라는 지시와함께 경계용실탄 탄창(30발) 2개씩이 지급됐다.
이날 전남대앞 시위진압과정에서 주부 최미애씨(23·임신 8개월)등 3명이부상했으며 공수부대에 연행된 2명은 28일 광주교도소에서 사망했다.▲전남도청앞 시위 및발포=전남도청앞 금남로 전면에 11공수 61, 62대대가, 노동청방면에 63대대, 광주천방면에 7공수 35대대가 각각 배치됐고 오전8시 수만명의 시위대는 시체 2구가 실린 손수레를 앞세우고 전남도청앞으로몰려왔다.
오전 10시 시위대 대표 4명은 장형태 전남도지사를 만나 공수부대 철수,연행자석방, 계엄사령관 면담주선 등을 요구했고 오전 11시 장지사는 헬기를타고 "계엄군을 철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시민들은 자제하고 생업에 복귀하라"는 방송을 했고 이에 대해 시위대는 낮12시까지 공수부대 철수를 요구했다.
오전 11시 63대대장은 대대 경계용실탄을 중대장들에게 1인당 10발씩 지급했다.
오후 1시 공수부대와 시위대가서로 10m 거리로 접근한 가운데 시위대의화염병 투척으로 계엄군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 장갑차 1대가 공수부대쪽으로 돌진했고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숨졌다.7공수 35대대는 철수하던 31사단 96연대 1대대 병력으로부터 경계용실탄 2백여발을 넘겨받아 장교들에게 분배했다.
시위대는 차량을 타고 광산,영광,함평,화순,나주,영암,해남,강진,고창,승주 등지로 진출해 화순 소재 4개 파출소에서 총기 4백60정과 실탄 1만발을탈취했고 나주경찰서에서 칼빈 5백여정,M1소총 2백여정,실탄 4만6천여발을탈취했다.
이날 하룻동안 일신방직,화순경찰서,한국화약 등을 습격해 총기 4천9백여정,실탄 13만여발,TNT 10여상자 등을 확보,무장했다.
시위대는 오후 3시 광주공원에서 총기를 분배하는 한편 총기사용 교육을실시해 시민군으로 불리는 무장 시위대가 본격활동을 시작했다.오후 5시 전남도청에 있던 7,11공수여단의 철수가 시작됐고 이날 전남도청및 시내일원에 대한 시위진압 과정에서 40여명이 총상으로 사망했다.〈5월22일〉
▲계엄군=오전 10시30분 2군사령부로부터 자위권발동지시가 정식으로 하달됐고 2군사령부는 전교사에 송정리비행장 확보 및 무장시위대의 외곽탈출 방지를 각각 지시했다.
오후 3시 2군사령부는 23일 오전 2시를 기한 충정작전 계획을 건의했으나육본은 무력평정은 지역감정상 곤란,민간인 인질시 대처곤란 등을 이유로 24일까지 대기할 것을 지시했다.
〈5월24일〉
▲계엄군 교대 및 오인사격=31사단 96연대 병력이 부대로 복귀하던중 전교사예하 기갑학교 병력이 시위대로 오인,총격을 가해 96연대 사병 3명이 사망하고 군인 2명과 민간인 10명이 부상했다.
오후 1시30분 주남마을을 출발한 11공수여단 선두가 무장시위대 병력 10여명을발견하고 총격전을 벌여 효덕국민하교 놀이터에서 놀던 전재수군(10) 등2명이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오후 1시55분 효천역앞에서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병력이 11공수 63대대를 무장시위대로 오인,집중사격을 가해 양측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9명이 사망하고 군인 33명과 주민 3명이 총상을 입었다.
이에 63대대는 부근일대를 수색,무장시위대 1명을 체포했다.이 과정에서 마을청년 권근립씨(33) 등 4명이 무장시위대로 오인돼 총격을받아 사망했다.
〈5월25~27일〉
▲최대통령=낮 12시15분 주영복국방부장관,이희성계엄사령관,전두환보안사령관,노태우수경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무충정작전을 27일 0시 이후전교사령관의 책임아래 실시하도록 최종 결정했다.
상무충정 계획을 보고받은 최대통령이 오후 5시30분 광주를 방문,광주시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녹음한후 상경했으며 오후 9시 최대통령 담화문이 방송을 통해 발표됐다.
▲도청 진압=26일 오후 6시 전남도청에서 수습위원들간에 마지막회의가 개최돼 진압작전시 무기를반납하고 의연히 처벌받자는 의견이 다수로 채택됐으나 박남선등 최후항쟁파에 의해 내쫓겨 오후 9시30분 모두 전남도청을 빠져나갔다.
27일 0시를 기해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개시됐고 계엄군의 광주재진입 작전수행과정에서 시위대 17명이 사망하고 2백95명이체포됐으며 계엄군 3명이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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