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한반세기 정치·경제·문화등…체계적조명3-조선로동당, 1당독재체제 확립"일등공

">>북한의 집권당은 '조선로동당'이다. 북한도 '천도교청우당'을 허용하는 등형식적으로는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모든 국가정책과 노선은 노동당으로부터 발로된다. 따라서 북한은 사실상 일당 독재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김일성은 생존시 자기의 사견을 노동당의 결정이라는 공적 과정을 통해 합법화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김일성은 당의 절대성을 의미하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한다"라는 구호를 제정, 당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도록 강조하였다.

이것은 결국 노동당은 김일성과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2년 개정헌법 11조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에서도 알 수있는 바와 같이 국가는 당의 지시에 의해 움직여지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당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의해 움직여지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것은 북한이김일성(현재는 김정일) 개인에 의해 움직여지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을의미한다. 노동당은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막강한 정당으로발전하였을까?

노동당이 창당된 정확한 시기는 '남로당'과 '북로당'이 합당된 1949년 6월30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은 당창건 기념일을 1945년 10월 10일로 잡고올해를 '당창건 기념 50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주장을 펴고 있는 역사적 근거를 추적해 본다.

해방후 북한에는 다양한 공산주의자들이 유입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파벌이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있었던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임춘추 최현 김책 안길등 빨치산파들이었다. 이들은 1930년대 북만주를 중심으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토벌에 쫓겨 소련령 하바로프스크 지역으로 피난, 소련의 첩보부대였던 '88여단'에서 활동하던중 해방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왔다. 이들은'88여단' 시절 소련군부의 신임을받았고 특히 김일성은 소련 괴뢰정부의 지도자로 내정되어 귀국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10월 10일 부터 개최된 '조선공산당 이북 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이다. 김일성노선 지지자들의 중심적 역할과 김일성의 기조연설이 돋보인 이 회의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북한은 조선공산당 북조선위원회로 호칭함)' 설치를 결의하였다. 이 기조연설이 귀국후 김일성의 최초 공식연설 이었다는 이유로 북한은 10월 10일을 노동당 창당일로 기념하고있다. 이후 '조선 공산당 북조선분국'은 1945년 12월 17일 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김일성을 당책임비서로 선출하고 당명칭을 '북조선공산당' 으로 개칭하였다.

노동당은 현재까지 6차례의 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당은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제1차 당대회는 '북조선공산당'과 '신민당' 합당문제를 주의제로 1946년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당명이 '북조선로동당'으로 정해졌고 당원수는 36만여명에 이르렀다. 제2차 당대회는 1948년 9월 9일에 있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준비를 위해1948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되었다.당규약이 정권창출에 걸맞게 수정되었다. 당원수는 75만명에 이르렀고 대의원수는 9백99명이었다. 제3차 당대회는 '전후복구 인민경제계획'의 성과를 '총화'하고 1957년부터 착수될 제1차 5개년 경제계획 수립을 위해 1956년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개최되었다.

제5차 당대회는 1970년 11월 2일부터 13일까지 12일간 개최되었다. 동대회에서는 '인민경제발전6개년계획'(1971~76)을 수립 통과시키고 7개년경제계획 추진결과에 대한 총화보고가 있었으며 당중앙지도기관에 대한 개편이있었다. 동대회의 특징은 김일성 직계 내지는 신진인물로의 세대교체와 김일성 김영주 계열의 핵심요직 장악이라 할 수 있다. 당원수는 약 1백60여만명대의원수는 1천1백11명이었다.

제6차 당대회는 1980년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개최되었다. 5차당대회이후 10년만에 소집된 이 대회에서는 의례적인 김일성의 사업총화보고,당규약개정등이 있었다. 6차 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1974년부터 당내 후계자로 내정되어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으나 1980년 6차 당대회를 통해 대외적으로 공식화되었다.

노동당은 6차에 걸친 당대회를 치르는 동안 두가지의 커다란 임무를 수행하였다.첫째는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지배체계를 확립했다는 것이고둘째는 김정일후계체제를 공고히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동당은 김일성 부자 우상화에 치중할수밖에 없었고 대중정당으로서의 역할은 소홀히 하였다.인민생활과 직결된 경제 문제 미해결은 대표적인 실책중의 하나이다.1980년에 개정된 당규약에 의하면 당대회는 매5년마다 개최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6차 당대회 이후 15년이 경과한 현재까지 당 대회는 개최되지 않고있다. 당대회가 개최되지 않는 기간 즉, 당 대회와 당대회 사이에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따라서 당중앙위원회는 실질적측면에서 북한 최고의 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다. 당규약 3장 25조에는 '당중앙위원회는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6개월에 1회이상 소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 중앙위원회는 정치국과 정치국상무위원회, 총비서와 비서를 선거하고비서국과 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전원회의와전원회의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사업을 당중앙위 명의로 조직지도한다. 따라서 규약상으로는 정치국과 상무위원회가 최고의 권력기관이다.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비서국이 실질적 최고권력기관이다. 당규약 26조에는'비서국은 간부문제 당내문제 기타 당면문제 등을 정기적으로 토의 결정하며그 결정의 집행을 조직 지도한다'라고 규정 되어 있다. 따라서 비서국은 당을 일상적으로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당의 중추기관이다. 비서국은 22개의 전문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전문기관들은 분야별 당정책을입안하고 그 실천에 대한 감독권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당은 물론 국가전체를 이끌고가는 '핵심중의 핵심'기관이다.결국 조직지도부는 간부와 인민의 지위와 신체의 개조를 통하여, 선전선동부는 이들의 정신의 개조를 통하여 체제를 유지시키는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치국, 당중앙위, 당중앙군사위 등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당조직지도부장과 당총비서가 북한내 최고 실권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당은 김일성 김정일의 사당으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노동당은 사당이 갖출 수 있는 제반 약점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김정일체제의 장래는 이러한 사당적 폐해를 어느 만큼 효율적으로 극복하느냐가 좌우할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