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의 푸른나무(187)-도전과 응징(18)

재미있다는 듯 경주씨가 웃는다. 눈아래 소복한 주은깨도 웃는다."병원에서 퇴원하면 제가 시우씨를 고향으로 데려다 줄께요. 시우씨가 연고 없는 도시생활에 적응하기는 힘에 부쳐요. 더욱 지금 같은 생활은"경주씨가 웃으며 말한다. 나는가만 있다. 경주씨를 보고 있는 것만도 마음이 편안하다. 병실문이 열린다. 아주머니 간호사가 조용히 들어선다. 경주씨가 말을 계속한다."정선으로 가면 할머니를 만나겠죠. 손자가 왔다고 할머니가 무척 반가와할겝니다. 할머니와 함께 고향을지키면 언젠가 어머니와 누이도 만나게 될거예요. 그분들이 이 땅에 살아 있다면 언젠가 한번은 고향에 들를테니깐.수구초심(수구초심)이란 말이 있어요. 여우가 죽을 때는 머리를 자기가 살던굴로 향한다는 말이죠. 모든 생명체는 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을 잊지못한다는 뜻이죠"

"마씨가 그런 말을 이해할까요?"

간호사가 경주씨에게 말한다.

"언제 들어왔어요?"

"방금"

"이해가 부족하더래도 상관이 없어요. 머리가 모자란다고 그 수준에만 계속 맞추다보면 발전이 없어요. 관심을 갖고 계속 말을 하고, 말을 시켜야 해요. 장애가 있는 사람에겐 애정 있는 관심이 중요한 교육이니깐요. 그 사람들은 그 점을 가장 민감하게 느낍니다. 장애자 교사들이 모여 그 사람들이알아들을 수 있는 말, 예컨대 그 사람들과 관계 없는 먹는 얘기, 영화 얘기,껄렁한 사랑 얘기를 하고 있으면 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그런데 얘기 내용이 어려운 장애자 학습훈련 프로그램, 장애자 재활치료에관한 전문지식의 의견 교환이면, 그 사람들은 귀를 쫑깃 세워 듣는답니다.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자기네 얘기를 한다는 것쯤 본능적으로 느끼지요. 교사들이 자기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걸 금방 깨닫는 거지요"경주씨가 말한다.

"재밌네요. 듣고보니 그럴 것 같아요"

간호사가 말한다. 경주씨가 나를 본다. 침대에 두 팔을 걸친다."시우씨, 난 고향이 서울 빈민촌 난곡동이예요. 낫골이라고들 말하죠. 그리운 추억을 도무지 남길 수 없는 삭막한 동네였어요. 그래도 그 좁장한 언덕길을 허기진 배로 타박타박 오르던 국민학교 저학년 적 하교길이 더러 생각나요. 끓여 먹을 라면이라도 한 개쯤 남아 있을까 하고 기대하며. 부모님은 하루 벌이 나가고, 오빠들은 학교에 가고, 낮에는 셋방이 늘 비어 있었으니깐요. 단칸 셋방에 다섯 식구가 살았어요. 동무들이 불던 풍선껌이 왜 그렇게 부러웠던지…"

경주씨가 웃으며 눈꼬리를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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