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천억설' 해프닝인가 검찰의 '진상' 시각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의 발언에서 비롯된 전직 대통령 4천억원 가차명계좌보유설 파문은 비실명자금의 실명전환처리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한 거액전주를 둘러싼 소문수준의 얘기가 세간의 입을 통해 전달되면서 발생한 단순해프닝으로 드러났다는 게 검찰의 잠정결론이다.검찰 수사관계자는 "비실명상태에 있는 거액전주의 자금이 실명화 처리방안을 놓고 입에서 입으로 청탁되는 과정에서 카지노 또는 슬롯머신 업계의자금으로 언급되다 내용이 각색내지 변질돼 마치 정권 고위층의 비자금으로둔갑한 사실이 발언 중간 전달자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검찰의 이같은 판단은조사초기 비자금 보유설이 전달되는 중간 발설자들의 소환조사가 본격화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결론이었다고 볼수 있다.조사착수 이틀째인 지난 8일 보유설이 전달되는 중간 경로에 있었던 관련자 8명이 한꺼번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과거 정권 최고위층의 비자금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조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회의가 검찰주변에서 강하게 일고 있었다.

정권차원의 비자금문제라면 이토록 많은 사람의 입을 거쳐 시중에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자체가 실존여부에대한 신빙성을 흐리게 한다는 상식적 판단때문이다.

검찰조사결과 비자금 보유설과관련해 과거 정권 실력자의 비자금임을 처음 언급한 요식업자 김일창씨(55)가 "정권 실력자의 비자금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액면 그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워 둘러댄 말"이라고 실토,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보유설은 말그대로 '설'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김씨에게 보유설을 전달한 이전 단계의 사람들 입에서는 정권차원의 비자금이란 언급은 전혀 없이 검찰이 '설'의 진원지로 주목하고 있는 이창수씨의이름과 주민등록번호, 1천억원 가량의 비실명자금등의 얘기만이 나오고 있었다.

특히 '설'의 진원지로 지목돼 검찰이 현재 행방을 추적중인 이씨는 지난7월초 전직 제일은행 대리인 이재도씨(35)에게 최초로 비실명자금의 실명전환방안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간 발설자인 박영철씨(43)와 김종환씨(42)등과 함께 한 자리에서 설은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후 10명의 중간 전달자를 통하면서 이 보유설은 비자금 규모가 1천억원에서 4천억원으로,소유주가 거액전주에서정권 실력자로 각색되는등 우여곡절을 겪은뒤 서전장관에게 이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의비자금보유설이 소문수준에 그침에 따라 소문의 진원지로 지목된 이창수씨와 이재도씨의 신병확보와 함께 이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1천억원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검찰은 10일 씨티은행본점 전산부, 강남지점,이창수씨의 집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으며 일단 이씨의 은행 계좌번호가 없는 상태이므로 본점 전산부를 통해 계좌의 실재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그러나 현재 검찰은 1천억원 비자금의 실존여부 자체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1천억원이 비실명상태로 예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간 씨티은행 강남지점의 수신고 규모에 비춰볼때 한 사람의 이름으로 1천억원이 입금돼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게 검찰의 설명.씨티은행 전체도 아닌 한 지점에 입금돼 있는게 사실이라면 통상 한 지점의 수신고가 많아야 1천억원 안팎인 점으로 미뤄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또한 비자금이 있다고 해도 비자금의 실체와 성격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단서가 없는 상태에서 진상을 규명해 낼수 있을지 회의적인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창수씨 자신이 직접 이 비실명자금의 실재여부및 실명전환방안을 타진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및 이재도씨와 함께 1천억원 비실명자금의 실명전환처리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있었던 박씨등 2명은 검찰에서 "이창수씨 본인은 비자금부분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모임을 주선한 이재도씨가 나서 얘기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이재도씨도 모임을 통해 이창수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을 전달했을뿐비자금의 실체와 성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설'의 진원지에 있던 두 이씨의 발언행태로 미뤄 비자금의 실존여부는 물론 돈의 성격자체도 현재로선 오리무중인 상태라고 볼 수 밖에 없다.더구나 이재도씨는 지난 5월 유가증권위조혐의로, 지난해 12월에는 사기혐의로수사당국에서 기소중지된 사실이 드러나 신병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검찰은 다만 보유설의 중간 전달자들의 진술을 통해 이창수씨가 자신의 명의로가지고 있는 비자금이 슬롯머신 업계관련 자금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을뿐이다.

검찰은 앞으로 이창수씨 명의의 비자금 계좌가 확인될 경우 자금출처조사를 벌여 이 비자금이 탈세혐의와 연관돼 있는지 여부에 대해 계속 추적할 방침이다.

단지 1천억원이란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이 실존한다면 수십개의 계좌로 분산돼있을 가능성이 커 추적작업이 상당기간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이고 자금출처를 밝히는데도 그만큼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점에 비춰 정확한 비자금의규모및 실체,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선 수사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