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2·12' 비밀감정 테이프 공개

가장 길었던 밤의 녹음기록"그러니까 지금 1공수에서 와가지고 육군본부, 국방부에 갔단 말이지요"(이건영)

"예, 지금 점령이 된 것 같습니다"(윤성민)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되나"

"글쎄 말입니다"

"아! 이걸 어떻게 하지, 어떻게 되는 건가…" (1979년 12월13일 새벽2시이건영 3군사령관과 윤성민 참모차장과의 통화)

12·12사건 당시 육본측의 통화내용을 보안사에서 감청한 이 녹음 테이프(월간조선이 입수, 9월호 부록으로 공개)속에는 그날 밤의 인간 드라마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2월12일 오후 8시50분 이건영 3군사령관이 윤성민 찬모차장으로부터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부터 이사령관이다음날 새벽 노재현 국방장관의 호출을 받고 국방부에 출두해 연행되기까지약 10시간동안의 통화녹음 기록이다.

작년 10월 검찰은 1년5개월간에 걸친 12·12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발표, 사실관계에 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녹음 테이프에 담긴 통화내용은 수사기록만으로는복원 불가능한 당시 현장의 실감을 그대로재현해주고 있다는 점에 커다란 가치가 있다. 무력진압 의지를 불태우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쉰 목소리와 허위보고를 하는 합수부측 장교의 불안한 음성, 갈팡질팡하는 군수뇌부의 넋두리 등 당사자들의 생생한 육성은 청취자로하여금 16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 기나긴 겨울밤의 현장으로 날아가게 한다.

하극상과 허위보고

부대출동을 막는 사령관의 지시를 사단장이 묵살하고 사단 참모장이 사령관에게 허위보고를 하는 12·12 그날의 하극상은 이 녹음 테이프에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다.

이건영 3군사령관이 예하 수도군단 참모장 김성환 준장에게 수경사 30단에가 있던 차규헌 군단장의 행적을 묻자 김참모장은 얼버무리다 질책을 받고있다.

"그런데 군단장이 왜 거기 가 있는가. 30단에…"

"……"

"지금 군단장이 30단에 가 있다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차규헌 군단장의)부관은 지금 어디서 전화를 받나"

'……'

'부관이 지금 참모장하고 전화를 통하는게 어디서 통하지?''확인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직접 전화통화 하지 않았나?'

'예'

'그러면 지금 참모장이 그 상태를 잘 모르는가,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가?'

하극상과 허위보고는 이건영사령관이 13일 오전1시50분쯤 9사단 참모장 구창회대령과 나눈 통화에극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사령관은 구창회참모장과의 통화직전 김봉규 9사단 30연대장으로부터 부대출동 지시를 받았다고 보고받았으나 구참모장은 거듭 부인하고 있다.

'9사단 30연대가 어디 출동하는 모양인데 어디 출동시키는가''연대 출동 안합니다'

'그런데 어디 출동한다고 그러는데 무슨 소리야'

'연대가 말입니까'

'응'

'연대출동 안합니다'

'지금 9사단 30연대장이 삼송리까지 출동한다고 전화가 왔는데…''연대 출동 안합니다'

구창회대령은 12일 자정쯤 노태우 9사단장으로부터 1개연대 병력출동 지시를 받은 상태였고 이건영 3군사령관과 통화한 후 13일 오전2시20분쯤 부대를서울로 출동시켰다. 육사 18기인 구창회대령은 하나회회원으로 노태우대통령시절 육사교장, 군사령관등의 요직을 지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고군분투

심지어 합수부측에서는 3군사령부 보안부대장 김부년대령과 헌병참모 조명기 대령에게 이건영 3군사령관을 언행하라는 지시까지 내리고 있다. 육본에서 이 정보를 입수한 이규식 정보처장이 소식을 알려줘 3군사령관에게 경비를 강화하도록 촉구하는 통화도 녹음돼 있다.

이 자료에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고군분투가 애처로울 정도로 절절히 드러나 있다.

그는 12월12일 밤 10시 16분쯤 이루어진 3군사령관과의 통화에서 30사단에모여 있던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 중장 등 합수부측의 회유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무력진압 의사을 강력하게 밝힌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유장군님 남의 부대에 와서 왜 이럽니까' 제가 이상해서 물으니까 '에이장장군 거 알면서 왜 그래. 이리 와''이리 오기는 어딜 와. 당신 왜 그래요.왜 남의 부대에 한밤중에 와서 무슨 지랄하고 있어쏴죽인다'이렇게 했더니황영시 장군한데 전화를 바꿔요. 황영시장군이 있다가 '장태완이 너 왜 그래, 알만한 사람이. 나하고 다 통할수 있는 처지인데 왜 그래. 너 이리와''아니 왜 이라십니까. 왜 그 우리 좋은 총장님을 어쩌자고 납치해가고 왜 이라요. 정말 그라면 내 죽여'했더니 '차규헌이도 와있고 다 와 있는데 마 이리 와 ''무슨…혼자 다해먹어. 임마, 난 죽기도 결심한 놈이야'"12·12 그날 거사를 계획했던 합수부측은 통신감청을 통해 육본측 지휘부의 동향을 훤히 파악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각지역보안부대나 정규육사출신 지휘관들을 체계적으로움직이며 정식지휘계통을무너뜨렸다. 이에반해 육본측은 명령계통마저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군지휘부의 혼선 역력

노재현 국방장관은 12일 오후 10시30분쯤에는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참모차장의 지시도 받지 말고 자신의 명령에 따라 부대를 움직이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참모총장을 대신해 군을 지휘하고 있던 윤성민참모차장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군지휘체계에 혼란을 가져온 지시였다. 이건영 3군사령관은 윤성민참모차장과의 통화에서 명령계통의 혼란을 지적하기도했다.

"육군본부서 명령계통이 일률적으로 나와야지 여러 곳에서 나오면 안돼요""저희들이 수경사에 있는데 여기서 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장관님이 직접 말하기 전에는 절대 하지말라고 하셨기 때문에그렇게 알고 계세요"

진종채2군사령관의 태도도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진사령관은 12월12일 밤10시20분쯤 정승화참모총장 연행 소식을 전하는 이건영3군사령관과의통화에서 정총장이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과 연루됐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는 이 녹음 테이프에 담긴 이건영사령관과의 두 차례에 걸친 통화에서 이미 사건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 이사령관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정보를 확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전두환보안사령관의 전임자였기 때문에 전장군측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희극적인 잡담도 녹음돼

12·12사건 다음날 군고위층 인사문제를 주제로 신원미상의 영관급 두 장교가 잡담하는 내용의 마지막 통화는 차라리 희극이다.

"응, 합참의장도 바뀔 것 같아. 그리고 이번에 이동이 많을 것 같아. 육사교장이다 뭐다해 가지고 아마 오늘 내일간에 매듭이 지어질 것 같애""원로들 싹 바뀌더군. 그렇지요. 엘리트들로…"

"요샌 월급 타먹고 애들하고 편히 사는 게 좋지, 감투 많이 써봐야 만날청결이나 하고 말이지"

"그 옆방이나 밀고 들어가요"

"하하하 참…"

"참 불행한 일이야. 정승화 참 게…그 3군사령관도 그렇고 참 높은게 좋은게 아니에요"

12·12 그날 수많은 장군들은 합수부와 육본측으로 맞서 군권(군권)장악과반란진압을 위해 대결했다. 전두환장군측은 전방을 지키던 부대까지 동원,마침내 권력을 장악했고육본측은 우월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출동을 결단하는 사람은 없었다. 장군은많았으나 진정한 지휘관은 찾아볼 수 없었던 어두운 밤의 기록이 이 녹음 테이프이다.

이밖에 이 녹음 테이프에 의해 새롭게밝혀진 점은 ①윤성민 참모차장이통화중에 이 사건을 '하나의 쿠데타'라고 성격 규정한 것 ②노재현국방장관이 3군사령관에게 "나의 육성 명령만 들으라"고 지시해 육본측의 지휘권을동결시켜놓고는 자신은 피신을 거듭함으로써 통신이 불가능한 상태가 돼 사실상 군의 지휘계통을 마비시킨 사실 ③13일 오전 노국방장관이 3군사령관에게 "상의할 일이 있으니 안심하고 국방장관실로 오라"고 한뒤 장관실 앞에서대기중이던 합수본부요원에게 연행되도록 유도한 점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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