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206)-제7장 도전과 응징(37)

"난 운이 나빴어. 어쩔 수 없지 뭐. 내 인생의 각본이 애초 그랬으니깐"순옥이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나도 순옥이와 외박을 했다. 나는 순옥이와 처음으로 그 짓을 했다. 그때도 순옥이는 내 몸을 받으며 울었다. 순옥이는 울며 오빠 이야기를 했다. 순옥이의 오빠는 다리 저는 장애자였다. 오빠는 자살을 했다고 순옥이가 말했다."정기검진을 받을 때가 됐어. 무서워. 난 안받을테야. 여기서도 그만둘거구. 바닷가나 산속으로 떠나겠어. 그럴 때 마두오빠 생각을 했지. 느린 속도로 살고 있는 오빠말야.트렁크에 갇혀 일주일을 굶고 살아난 오빠말야. 한때는 오빠가 뭣때매 사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어. 오빠 사는게 너무 재미없어보였거든.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나이 먹는 오빠말야. 난 너무 빨리 나이를먹었어. 오빠 두배로 빨리 살았지. 너무 빨리 모든걸 알았구. 그러니 빨리죽는게 당연하지"

순옥이가 헛구역질을 한다. 내어깨에 기침을 뱉는다. 머리를 기댄다. 순옥이의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허리의 동작도 멈춘다.

"점심 저녁도 안 먹었어. 정말 취했나봐. 안 취하면 약을 먹어야 돼. 낮에도 약 먹고 술 마셨어. 염산알부민. 오빠가 그 땅콩 좀 사줄래?""사줄 수 없어. 돈이 없어"

"나도 우리 오빠처럼죽을까봐. 마두오빠, 나와 여행 안하겠어? 멀리로.그래서 내 죽는걸 지켜봐줘. 죽고 나면 오빠가 경찰서에 신고해. 에이즌 밝힐 필요도 없구. 그리고 내 몫까지. 천천히 살아줘. 오래, 오래…"순옥이의 말에 입술에서 궁근다. 몸이 허물어진다. 내가 받아 안는다. 나는 순옥이를 무대에서 끌어내린다. 웨이터가 달려온다. 낯선 얼굴이다."예리가 많이 취했군"

웨이터가 말한다. 웨이터가 순옥이를 나로부터 인계받는다 의자에 앉힌다.냉수를 가져오겠다며 뛰어간다.

"오빠, 가지마"

순옥이는 테이블에 머리 박는다. 손을 내젓는다. 나는 정말 순옥이가 죽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즈에 걸리면 정말 죽을까. 나는 알 수 없다. 왜 에이즈에 걸릴까. 역시 알수 없다. 순옥이가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모른다. 지하실 공장에서 일할 때, 나는 늘 겁에 질려 있었다. 육군 중사출신 조씨와 눈만 마주쳐도 겁이 났다. 멍텅구리배를 탔을 때도 그랬다. 갑판장 최씨가 갈고랭이만 들어도 겁이 났다. 폐차 트렁크에 갇혔을 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클럽 안으로 누군가 뛰어든다. 짱구다.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나를 본다. 내 쪽으로 뛰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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