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을 사흘이나 앞둔 아침이었다. 나는 거창행 버스 뒤켠에 앉은채멍청히 차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추석이 코앞에 다가와 있어 버스터미널은벌써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늘어서 있는 버스 앞에서 목청을 돋우어 손님을부르는 소리와 차안의 높은 볼륨이 신경을 난타하고 있었지만 나는 참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제기럴 추석이란게 뭔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몇사람의 승객들 꽁무니를 이어 중년사내 하나가 올라탔다. 조그마한 여행가방을 든 사내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승객들 무릎위에 좀약봉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봉지 안에는 대여섯개쯤 되어 보이는 나프탈렌이 들어 있었다.나는 사내가 좀약선전을 하고 있는 동안 시선을 둘데가 없어 난처하기 이를데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사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던 일이었다.나로선 이름 그대로 민족이동이랄 수 있는 행렬을 피해서 승용차도 놔두고사흘이나 앞서 나선 이 힘든 성묘길인데 잠시나마 무릎위의 좀약 몇알로 신경을 쓰다니 어처구니 없을 뿐이었다.
나는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것을 적잖이 후회하면서 신문을 들었다. 사설을 두어줄 읽다말고 삼면을 폈다. 집단 시위, 사기와 횡령, 교통사고. 언제나처럼 삭막한 기사로 넘치고 있었다. 문득 시선을 드니 무좀약을 선전하던 그 사내가 내 무릎위에 놓여있는 나프탈렌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무참히걷어가고 있었다. 사내가 내리는 거와 함께 발차벨이 울리고 차가 구르기 시작했다.
나는 도심지를 빠져 단조로운 시골국도를 얼마간 달렸을때 비로소 마음이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안도 속에서 제옆에 젊은 아가씨가 앉아있는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무릎 밑에는 종이백에 든 선물꾸러미가들어 있었다. 젊은 아가씨는 얼굴빛이 검은 편이긴 했으나 보기 싫을 정도는아니었다.
덕곡터널을 지나자 갑자기 눈앞이 트이며 푸른 초가을 산이 꿈틀거리며 다가섰다. 어젯밤 내린 비로 한층 생기가 돌고 있었다. 수해가 나야 풍년이 든다더니 들판은 온통 황금물결이었고 도로변의 가로수도 느순히 가을정취를풍겼다.
간이역에서 차가 잠깐정차했다. 운전기사가 3분간 정차한다고 소리 질렀다. 아가씨가 허리를 일으켜 짐을 좀 봐 달라면서 하차하는 승객 뒤를 따라내렸다. 이내 돌아온 아가씨의 손에는 귤이 한줄 들려 있었다. 아가씨는 두알을 꺼내어 내게 내미는 것이었다. 나는 귤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시늉으로 미소를 지었다. 귤을 까 입에 넣는 순간 차안의 공기가 가을바람처럼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저씬 어디까지 가시죠"
아가씨도 귤을 까 입에 넣으면서 물었다.
"거창까지, 아가씬…"
'전 더 갑니다. 안의 입니다'
아가씨는 귀옆으로 훌러내리는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면서 말했다. 나는 아가씨가 대구의 어느 기업체 같은데서 일하는 근로자일 것으로 짐작했다. 스물 한둘 되었을까, 표정이 어둡지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버스는 가풀막길을 돌아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옆을 보니 젊은 아가씨는 어느새 의자에 머리를 기댄채 졸고 있었다. 나는 창밖에눈을 둔채로 먼 기억속에서 아물거리는 고향마을을 생각했다.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둔덕밑 마을은 지금은 못알아 볼만큼 변해 있으나 대대로 가족사가이어진 곳이며 생을 마칠때까지는 잊어버릴수 없는 추억의 장소였다.진달래꽃이 앞다투어 피면 살구, 도화가 피고 그 뒤를 배꽃이 서리를 맞은듯 하얗게 피는 마을이었다. 산밭을 일구어 가꾼 돌배는 철늦게 피긴 하지만생각보다 향기로웠다. 돌배는 잘 익어도 가을에 먹을수가 없었다. 따서 두었다 떫은 맛을 가시게한 다음 먹어야 제맛이 났다. 내 혀끝에는 삼심년이 흐른 지금도 그 시큼한 배맛이 감돌고 있었다.
정류소를 두개나 지났는데도 나는 가슴이 메어 알지를 못했다. 스쳐지나가는 산과 들을 바라보는 내 동공에는 떨쳐 버릴수 없는 고향의 풍경들이 너울거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은 그 배나무 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등성이에 있었다. 다박솔과 굴참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빛살 바른 곳이었다. 몇해전부터 빗돌을 세운다는 것이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묘소에서 배나무밭을 내려다보면 실로 그것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고향의 배밭 생각과 함께 철없는 아일적 졸지에 잃은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떠올렸다. 그러나 두사람의 모습은 안개에 가린듯 희미하기만 했다. 그렇게떠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성장할때까지 꿈속에도 한번 찾아와 주지 않았다.
봄이면 청명과 한식, 가을이면 추석성묘를 빠지지 않지만 올봄 한식에는고향을 찾지 못했다. 내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석을 세워야지. 삼십년도 더 지난 슬픈 세월의 저편에누워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조금이라도위로해 드릴 수있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비석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내의식에 불현듯 자막이 흐르듯 스쳐가는 말이 있었다.
〈그날의 서럽고 쓰리던 그 아픈 자취/ 세월의여울따라 빛 바랜듯 정이성그러/ 솔바람 고요를 헤치고 저녁노을 고와라/ 누구나 한번은 맞을 영원한잠자리이리/ 이승의 수많은 사연 잔디밑에 숨쉬는지/ 풀국새 울음소리만 솔가지를 흔든다〉
먼나라로 이민간 어느시조시인이 쓴 '성묘'라는 시조였다. 외우다시피한그 시조를 떠올리고 있을 때 난데없이 내 호흡이 막히는 것같이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그 시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향을 향해 가고있는 차안의 사람들과 허리띠를 동인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인 까닭이었다. 그런 내 귀에차체의 흔들림과는 또 다른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바람이 흘러들리 없는데도 흐르는 소리가 바람소리로만 들렸고, 얼마후 그소리의 정체가세월 흐르는 음성인것을 알았을 때 버스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능선이 길게 뻗은 고향하늘은 눈부시도록 높기만 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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