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224)-강은 산을 껴안고(17)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슬프다. 새삼 눈물이 솟는다. 눈물에할머니의 얼굴이 가려진다."북실댁이 이제 여한을 풀었어.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손주가 돌아왔으니.북실댁, 봐요. 손주가 으젓한 신사가 되서 돌아오지 않았수"명씨아저씨가 말한다.짧은 머리카락이 하얗다. 예전에는 없던 콧수염을길렀다.

"저 총각과 처녀는 누군고?"

할머니가 건넌 자리에 앉은 짱구와 순옥이를 본다.

"시우와 함께 온 손님입니다" 윤이장이 할머니께 말한다. 짱구와 순옥이를본다. "이 산골짜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추석이라 차가 밀리고길이 험했지요?"

"아니, 뭘요. 길이 좋턴걸요"

짱구가 대답한다.

"시우야, 그새 어디 었었어?" "뭘하느라 아우라지엔 그렇게 걸음을 안했지?" "정말 신사가 됐네. 인물났어" "시우야, 너 엄마와 누이는 못만났지?""할머니가 널 얼마나 기다렸다구. 날마다 나루에 나가 너 오기만 기다렸단다" "북실댁이 제 정신 돌아오면 잔치라도 벌여야지" "시우형 도대체 어디서오는 길이야?" 여기 저기서 질문이 쏟아진다. 터진 봇물 같다. 나는 얼떨떨하다. 둘러앉은 방안 사람들의 얼굴 익히기가 바쁘다. 모두 아는 얼굴이다.내가 떠난 사이 그들도 나이를 먹었다. 늙은이들은 더 늙어버렸다. 할머니는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윤이장이 나선다.

"북실댁만 경사를 만난게 아니오. 우리 싸리골도 경사요. 잃었던 식구를찾았으니. 손님도 왔는데 그렇게 질문만 해쌓기요. 집에 가서 뭐든지 먹을걸 내오시요. 손 대접을 하며, 차근차근 얘기를 들읍시다. 시우가 그새 뭘했는지. 고생이 오죽 많았겠소. 멀쩡턴 사람도 객지 나가면 고생인데"윤이장의 말에, 그럽시다며 아녀자 몇이 일어선다. 밖으로 나간다. 순옥이가 뒤에 두었던 포장된 선물상자를 꺼내놓는다.

"시우씨가 사온 선물입니다. 할머니 옷과 전기밥솥이예요"

순옥이가 말한다.

길례댁이 선물상자를 푼다. 할머니의 갈색 털재킷이 나온다. 군청색 골덴통치마가 나온다. 꽃무늬 내복 한 벌이 나온다. 채리누나가 사준 옷이다. 그옷을 보며, 방안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모두 한마디씩 한다."북실댁이 그렇게 기다리시더니, 효손을 봤어" "아이구, 물색이 곱기도 해라. 할머니 겨울 따숩게 나겠네" "시우가 이렇게 출세해서 돌아올줄 누가 알았겠어" "북실댁이 이제 눈 감으셔도원이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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