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모여 얘기할 곳조차 없어지니 막막하기만 합니다"깊이 패인 주름살엔 강제징용이란 명분하에 타국땅에서 보내야 했던 50년 세월이 하나씩 새겨진 듯 보였다.사할린주 한인 노인협회 박해동회장(74). 집안 살림을 꾸려야 하는 형과남양군도 보국대로 징병됐다 말라리아에 걸려 돌아온 동생을 대신해 약관의나이에 낯선 땅 사할린으로 끌려간지 50년. 다시 잠시 고국의 땅을 밟은 그에게 귀향의 기쁨보단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해야할 일의 부담감이먼저 엄습했다.
"사할린의 물가고는 살인적입니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노인들이 만남의장소라도 가지고자 마련했던 사무실 임대기간이 만료돼 옮겨야 하지만 천정부지로 솟는 물가를 이제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지난 92년 5월 14일 사할린 거주 교포 1세 노인들은 고국에 돌아가 묻히고싶다는 작은 소망이라도이루고자 사단법인 사할린주 한인노인협회를 결성,대일본 영주귀국 보상문제 해결 창구를 열었다.
박회장은 "일본 정부의 문전박대는 참을 수 있어도 어느 순간 조국이 우리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는 견딜 수 없이 가슴 한구석이서늘해집니다"라고 말하고 현재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조국이 있다는 든든함과 작은 경제적 지원이라고 밝혔다.
"노인회보를 발행해 이제는 몇명 남지도 않은 사할린 징용자들의 소식을나누고 싶지만 중고복사기는커녕타자기조차도 없어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하는 모습속에는 선진국 진입을 호언하는 조국에 대한 씁쓸한배반감을 엿볼 수 있었다.
박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사할린 거주 교포1세의 9할이상이 경상도출신이며 대구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
"반세기 동안의 억류생활 끝에 늙을대로 늙어버린 한인1세들은 조국으로의귀환을 꿈꾸며 한사람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끝내 이 얼어붙은 땅사할린에 뼈를 묻지 않으면 안됩니까"
어느새 박회장은 눈시울을 붉혔고 거칠어진 손마디는 순간 떨렸다.〈김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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