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의 푸른나무(226)-강은 산을 껴안고(19)

나는 할 말이 너무 많다. 고물장사 아저씨가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울면서 나룻배를 탔다. 그로부터 그 많은 사연을 눈물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다. 기쁠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잠시였다. 슬펐을적이 더 많았다. 혼자 훌쩍이며 보낸 시간은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럴 적에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할머니를 생각했다. 시애와 엄마를 생각했다. 아우라지를 떠올리며 울음을 참았다. "삶이란 그런 거야.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주지. 아픔을 참고 견뎌내야 해. 한대지방 나무가 더 단단하지 않니" 강훈형이 말했다. "굶주림이나 헐벗음도 생각하기 나름이야. 그걸 괴로움이라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지. 그러나 인생이란배를 타고 건널 동안 거센 폭풍우도 바다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면 그 모험도즐겁지. 루안다나 이디오피아 난민들보다 더 불행한 선진국 배불뚝이도 많아.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깐.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땐 늘 불평과 고민이 따르니깐. 온실에서 곱게 자라는 풀이 있고, 사막이나 툰드라에서 자라는풀도 있어. 행복의 본질을 세속적 환경으로 따질 수 없지" 풍류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어려웠다. 다만, 슬픔은 참아야 되고 사막에도 풀이 자란다는 사실만 알아 들었다. 슬픔은 참다보면 가라앉고, 사막은 모래땅이다."…저도 잘 몰라요. 시우가 어디서 뭘하다 그 항구까지 오게 됐는지. 배를타고 새우를 잡았다고만 말했어요. 시우는 말도 어눌하지만 원체 입이 무거우니깐요.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뛰었죠. 일년 반 정도 될겁니다"짱구가 말한다.그랬다. 나는 아무에게도 내가살아온 삶을 말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는지 몰랐다. 말을 하려면 목부터 메어왔다. 아무도자세히 묻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 나를 상대하지 않는다. 짱구에게만 묻는다. 짱구가 그럴 듯하게 대답한다. 기요가 있다면 더 그럴싸하게 대답할 것이다."참, 텔레비전 안봤습니까. 시우가 폐차장 폐차 트렁크에 일주일을 갇혀있다 살아난 사건. 중상을 당했는데 물도 안먹고 버텨냈지요. 신문에도 나고텔레비전에도 나왔는데요"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봤어요. 여자 애 둘하고 남자 애 하나가 지하에 깔렸다 살아났지요. 박 무슨 딸애가 가장 늦게, 십오 일만엔가 살아나온 거로 아는데?"

윤이장이 말한다.

"삼풍백화점 사건으로 시우 사건이 묻혀버렸군요. 하여간 종성시에서는 시우가 유명 인물이 됐지요. 시우야, 너 돈 가졌잖아. 할머니께 드려"짱구가 내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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