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고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 고향에는 비록 '눈가가 터진 살구처럼 짓무르'고, '허리엔 오랜 물리치료로 피멍이 상어껍질로 늘어붙'은팔순의 어머니가 외로이 계시고,뒷산 개울엔 산업문명의 찌꺼기가 널려 있을지라도 고향을 가진 이는 그래도 행복하다.부족국가 시대에 이서국이었던청도를 고향으로 가진 서림 시인은 행복하다. 이 혼돈의 시대에 청도는 그에게 세상을 받쳐드는 지렛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첫 시집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의 첫 구절은 이러하다.'청도 사람에게 이서국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다/ 이 세상이 이서국의 안이고 밖이다' 중심이 없어 혼란스런 이 시대에 행정상 시골 읍면에 불과한 고향을 하나의 나라로 볼 수 있는 시인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그것은 아득한 옛날과 현재를 이어내는 시인의 상상력이 가져다 준 행복이다. 그래서 그는 가족의 간난을 그려내는 시나 주변적 삶을 살아야 하는 농촌처녀를 옛 이서국 통치계급에게 겁탈당한 이서국의 처녀와 대비시키는 시에서도 감상에흐르지 않는다. 시인이 청도의 예비군을 이서국의 죽창든 늙은 병사와 교차시키거나, 공사장의 인부를 옛날 농사짓다 잡혀온 이서국의 노예와 병치시킬때, 독자는 슬픔의 서정보단 상상력의 재미를 느낀다.
네온으로 만든 관을 쓰고, 오토바이를 탔으며, 인물의 몸 전체가 TV모니터로 된 백남준의비디오 작품이 있다. 전자문명을 구가하는 현대인을,철제무기를 들고 말을 탄 고대 정복자의 모습으로 희화화시켜 놓은 것이다. 서림시인은 이 시대의 정황을 사막으로 인식하고 현대인을 노예로 파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백남준의 작품을 볼 때와 같은 상상력의 쾌감을 준다.또 '이서소국 장터/돌도끼나무 끝에 매달아 허리춤에 꿰차고서 /느릿느릿걸어가는 부족장/검게 탄 장딴지가'와 같은 구절은 박수동의 만화'고인돌'의주인공 모습을 연상시킨다.
서시인은 역사적 상상력과 만화적 상상력을 서정의 세계와 교묘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그것은 풍자에서는 백남준에게 뒤지고 재미에서는 박수동보다모자란다. 그가 시의 중요한 한 요소인 리듬이나 형식, 혹은 언어의 다듬질에 별반 구애받지 않는 것도 상상력의 도취가 그런 고민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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