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229)-제8장 강은 산을 껴안고 (22)

"시우야, 시우 너가 왔구야"누가 나를 부른다. 나지막한 목소리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알수 없다.폐차 트렁크에 갇혔을 때가 그랬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많은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할머니, 시애가 나를 불렀다. 꼭 그때와 같다. 누가 내 한 손을 잡고있다. 손을 조무락거린다.

"하늘님 고맙습니다. 우리 시우를 보내줘서. 정한수 떠다놓고 조왕신에 빌고 빌었더니 하늘님도 무심찮게, 우리 시우를 살려 보내셨군요. 이번 한가위때는 올려나 하고 앙원했더니 생시에 상면토록…"

나는 살며시 눈을 뜬다. 머리수건 쓴 할머니 얼굴이 눈앞에 있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있다. 온정신으로 열심히 기도를 읊고 있다. 나는 할머니를 보기가 부끄럽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할머니의 낮은 목소리를 자장가삼아 더 듣고 싶다.

"내 이 손주와 한 해를 한 솥밥 먹고 같이 살면, 이제는 눈 감아도 원이없겠습니다. 하늘님, 이 은덕을 어이 갚을고요. 고맙고 고맙습니다.…"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발소리가 부엌안으로 이어진다."북실댁, 밥물이 잦아지구만. 방에서 뭘합니까. 어서 나와봐요"실례댁의 목소리다.

"오냐, 내 나가마. 우리 손주 자는 얼굴 보느라고"

할머니가 내 손을 놓는다. 밖으로 나가는 눈치다. 그제서야 나는 눈을 뜬다. 일어나 앉는다. 나는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있다. 짱구는 아직도 한잠에들어있다. 그도 이불을 덮고 있다. 부엌에서 말소리가 들린다."동네 두부는 우리 집에서 만들기로 해서 우선 찌는대로 몇 모 가져왔어요"

실례댁의 목소리다.

"손님이 왔는데 그래도 고기국은 올려야지. 이장댁이 어제 여량에 나갔다육소간에 들렀다더라. 한 근만 얻어주게"

"네, 그러지요. 도담댁을 보낼께요. 노친네가 무슨 음식을 만들겠다고"실례댁이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부엌과 연결된 쪽문을 연다. 할머니가 부뚜막에서 도마에 무를 썰고있다. 나를 본다. 눈을 깜박인다."시우, 깼구나. 이 원수놈의 자식아. 객지 있다면 소식이나 전하지. 가랑잎 같은 이 할미가 불쌍치도 않더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먹인다. 소매로 눈을 훔친다. 도마만 내려다보며 나를 안 본다.

"하, 할머니…"

나는 말을 더 잇지 못한다. 목이 잠긴다. 눈앞에 할머니의 모습이 어룽진다. 할머니가 콧숨을 들이키며 운다. 일을 하며 운다. 한사코, 나를 보지 않는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