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내가 할 일 없어요?"나도 눈물을 닦고 묻는다.
"아무 할 일 없다. 방에 가만 앉았거라. 어디 나가지 말고, 방에 있어"나는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선다. 어느새 날이 샜다. 동녘 하늘이 훤하다.송천 둑에 늘어선 키 큰 미루나무는 아직도 푸르다. 미루나무 사이로 붉은기운이 번진다.그쪽 새떼들의 지저귐이부산하다. 이맘때쯤부터 철새떼가날아든다. 겨울이 올 때까지 두달동안, 하늘과 강에는 철새들의 이동으로 시끄럽다. 여름이 물러가면 북에서 먼저 찾아오는 새가 지느러미발도요다. "시유야, 시애야, 어서 일어나. 송천에 새떼 구경 나가" 아버지가 우리 남매를깨웠다. 시애와 나는 손을 잡고 새벽 들길로 나섰다. 시애는 노래를 불렀다."…우리 오빠 말타고 장에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지요" 이슬 맺힌 풀섶에 발목을 적셨다. 송천에는 새떼들의 물고기 사냥이 한창이었다. 더러는 자갈밭에서 날개 손질도 했다. "저 도요새가 우리 나라에 날아드는 도요새 중에 유일하게 헤엄을 칠 수 있지. 발가락 사이에 지느러미 같은 걸 달고 있거든. 그래서 지느러미발도요라고 불러"
나는 구두를 신는다. 채리누나가 사준 구두다. 마당을 나선다."시우야, 어디 가?"
할머니가 허리 숙여 부엌에서 나온다.
"어디 가? 송천요. 새 구경하러"
"아서라. 이젠 넌 나가면 안돼. 집에만 있어. 나도 이제 너 옆에서 널 지킬테야"
할머니가 쫓아온다. 내 팔을 잡는다. 할머니의 깜박이는 눈빛이 간절하다.나는 그만 물러선다. 마루에 걸터 앉는다.
"시우오빠. 잘 잤어?" 건넌방에서 순옥이가 나온다. 할머니를 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시우오빠 친구예요. 어젯밤엔 시우오빠를 잘 알아보지 못하시데요?"
"내가 그랬어요? 난 모르겠는데. 먼 길에 우리 시우 데려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어디 있나. 우리 시우를 할미한테 데려다주다니"
삽짝으로 도담댁이 들어선다. 양 손에 나물 접시를 들고 있다. 도담댁이나와 순옥이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뒤따라 실례댁이 들어선다. 신문지에 무언가 뭉쳐싼 걸 들고 있다. 나와 순옥이에게 역시 인사를 한다. 부엌으로 들어간다.
"곧 밥상 채려오마. 어디로 나가지 마. 밥 먹고 나랑 너 아비 산소에 가야지. 동네 사람들이 벌초해주기 전에 시우 너가 해야 해. 너가 그 일을 해야지"
할머니가 말한다. 바삐 부엌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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