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의 푸른나무(233)-강은 산을 껴안고(26)

이제 개울을 멀리한다. 산길을 오른다. 관목대가 나선다. 싸리나무, 다복솔, 철쭉이 자란다. 칡넝쿨, 다래넝쿨이 우거졌다. 발소리에 놀라 여치와 범메뚜기가 튄다. 앞서 오르는 할머니의 걸음이 힘에 부친다. 허리를 너무 숙여 기다시피하고 있다. 내가 할머리를 부축한다."시우야, 너 아비 산소 옆에만 나무가 섰지. 잎 넓은 후박나무가. 그 후박나무만 찾으면 거기가 아비 뫼다. 후박나무를 누가 심은지 아니? 생각이 나냐?"

할머니가 헉헉대며 묻는다. 잠시 다리쉼을 한다.

"나무요? 생각이 나고말고요. 내가 심었지요. 할미꽃도 심고, 진달래나무도 심고, 후박나무도 심었어요. 하 한서방이 삽질을 했지요. 할머니꽃은 할미꽃, 내 나무는 진다래나무, 아버지 나무는 후박나무"

아머지가 무덤 속에 잠들자, 나는 나무를 심었다. 아버지가 심심해 할까보아 심은 나무다. 그 나무가 아직도 있단다. 이제 짱구와 순옥이가 앞선다.순옥이의 손에는 들국화다발이 쥐어져 있다. 미화꽃집에도 국화가 있었다.들국화는 없었다. 미미는 꽃 속에서 살았다.

"가자. 너 아비가 기다린다. 너가 오기를 학수고대해. 어서 올라가야지"할머니가 일어선다. 나는 할머니를 부축한다. 동네 공동묘지는 잠시 더 올라가야 한다. 싸리골산 양지녘에 여러 무덤이 있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차츰 키를 세운다. 숲을 이루어 그늘을 만든다. 눅눅한기운이 느껴진다. 여기 저기 고사목이 흩어져 있다. 고사목에 버섯들이 비늘처럼 자란다. 버섯은 그늘지고 축축한 터를 좋아한다. "시우야, 수많은 벌레들이 보이지?" 아버지가 고사목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 밑둥이 부러져뿌다귀로 남은 고사목에 딱정벌레가 오르내린다. 구멍을 파고 들랑거린다. "자연의 질서, 순환의 법칙이다. 벼락이나 병충해로 큰나무가 이렇게 죽으면,많은 생물들의 먹이가 되지. 버섯과 이끼류가 죽은 나무를 터삼아 자라. 작은 벌레들이 나무를 갉아 먹으며 살아. 여기봐, 이 참나무 고사목 옆에 어린참나무가 자라잖아. 먼 훗날, 이 어린 참나무가 어른 참나무가 되지. 너가자라 어른이 되듯"

싸리봉 중턱까지 오른다. 소나무가 벌채된 훤한 더기가 나선다. 여기에 서면 아우라지 일대가 다 내려다 보인다. 무덤들이 흩어져 있다. 싸리골 사람들이 죽어 묻히는 장소다. 아이들은 죽어도 여기에 묻히지 않는다. 고모도묻혀 있지 않다. 고모는송천 강물에 떠내려 가버렸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비석이 섰는 무덤이 있다. 비석이 없는 무덤도 있다.대체로 벌초한 무덤들이다. 무덤들이 이발한 머리같이 말갛다. 나는 아버지무덤을 찾는다. 아버지나무를 찾으면 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