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8회 매일 여성한글백일장 최우수작

-산문(근로부-안녕히 주무셨어요?-송 미 숙

12시간동안의 긴 밤근무의 끝은 간호사실안의 블라인드를 올리며 조금씩꿈틀대는 도시의 소음을 마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잠깐 동안의 눈붙임으로적정수면 시간을 떼운탓에 눈두덩은 부어있고 마스카라가 눈물에 젖어 눈언저리는 까맣게 번져있고 머리는 캡밑으로 올올이 빠져있고 매무새가 말이 아니다. 양치질을 하고 얼굴에 분도 덧바르고 빨강색 립스틱을 바르며 거울앞에서 살짝 미소를 준비한다. 밤근무끝의 일과는 밤새 환자들의 무사안녕을묻는 병실방문이다.

환자 한분한분 손도 잡아보고 아픈다리, 팔도 만져보고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를 한다.

어떤 할아버지는 "밤새운 얼굴이 어찌 그리 고와?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데이"하신다.

아침마다 빨강 립스틱을 고집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이다. 누군가의도움을 절실히 필요로하는 환자들인만큼 늘 옆에있는 우리 간호사들이야말로사소한 것조차 조심하지않고 신경쓰지 않으면 그들에게 고통보다 더 심한 서글픔까지 던져주게 될것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낮근무여서 마음까지 상쾌한 저녁, 퇴근을 준비하는데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전화기를 타고 오는 목소리는 가물가물한 기억속에 자리잡은 퇴원한 환자였다. 오래전에 퇴원했던 환자라서 금방 생각나지않아 잠깐동안 생각에 잠겼는데 "아 그 518호에 입원했던 황수근이라고 허벅다리 뿌러져서 수술했는데 골수염 생기갔고 한참 고생안했나?"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 간호 열심히 하던 따님 경숙씨는 참 안녕하신가요?"

"내가 전화한 것도 내 딸아이 땜에 안했는가. 꼭 초대 한 번 하라고 안카나. 오늘 저녁 시간되면 우리집으로 꼭 와래이, 꼭이다" 별 약속도 없었던터라 집 약도를 전해듣고 병원을 나섰다.

그때 옆에서 그렇게도 열심히 간호하던 경숙씨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어머니가 안계셨다-아버지 옆에서 소·대변 다 받아내는 간호를 두달동안이나 했었다. 그래도 한번도 찡그림없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물어물어 찾아가니 문앞에 황수근씨와 경숙씨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아니 오늘 무슨 날이예요? 갑자기 초대를 다 해주시구요"

"그게 아이고 나 병원에 있을 때 아가씨 땜에 병 다 나았지 싶다. 아침,저녁으로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사람은 간호사 아가씨밖에 없었데이, 경숙이도 그때 하도 고마워서 내 아가씨얘기 안했는가.

돈을 줘서도 아이고, 그렇다고밥을 줘서도 아이고, 단지 그 인사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막 아프다가도 아가씨 인사한번 받으면 퍼뜩 나아야지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 않았는가. 퇴원할 때는 그냥 수고했다고 한마디하고 왔지만 내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꼭 한번 인사하고 싶었데이" 아저씨얘기를 듣고 있던 내가 오히려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인사한마디가 이렇게 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니…

집으로 돌아오면서 줄곧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동안 바쁘다고 혹은 힘들다고 나를 찾아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불쾌하게 한적은 없었는가?

혹시라도 얼굴도 쳐다보지않고 대답을 했던 적은 없었나. 혹시 혹시라는생각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였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없었는가?

가을인데도 아침 저녁으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쌀쌀한 날씨다. 보일러공사를 하는탓에 병실에 온기가 없다.

밤 12시 병실병실을 돌아다니며 이불을 챙기고 불도 꺼준다.내일 아침에는 또 다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인사를 해야지"안녕히 주무셨어요?"

(구미 고령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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