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호 칼럼-또 하나의 [생각하는 사람

**끓던 분노 서글픔으로올해 가을에는 이상하게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어떤 상이 머리속에 맴돌아 떠나지를 않는다. 수일전 일본의 나가사키(장기)에서 열린 한국 제회의에 갔다가 그곳의 평화공원에 있는 유명한 조각 평화기념상을 찾았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막상 거대한 조각앞에 서니 압도적이었다. 한손은 하늘을 가리키며 원폭의 위협을 지적하고 다른 한손은 수평으로 뻗어 평화의 의지를보여주고, 두눈을 감고 피폭자의 명복을 비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앞에서 어쩐지 내머리가 숙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멋대로 해석을 달리해 보았다. 원폭투하에 대해서도 노(NO),일본의 전범행위에 대해서도 노,그리고 눈을 감고 한국등에 사죄하며 새길을 찾아 명상하는 '생각하는 사람'의 상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했다. 그리고강연서두에 나의 해석을소개하며 동아시아의 현관의 생각하는 사람의 상으로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고 나니 문득 로댕의 유명한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싶었다.도쿄에 머무는 동안 우에노(상야)공원안에 있는 로댕조각관에 들러 로댕의조각원본앞에 섰다. 단테의 '신곡'에 따라 지옥문앞에 앉아 생각하는 '생각하는 사람'의 상은 역시 로댕의 천재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명품이지만, 연인을 찾아 지옥문앞에서고민하는 모습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역사적 고민과는 거리가 먼듯하여, 실례지만 곧 그앞을 떠났다.

귀국후 곧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을 찾았다. 국보 83호의 금동상은 여전히 천년의 생각속에 잠겨 있는듯 했다. 석가가 젊은시절 나무아래에 씨뿌리는 농부의 보습에 찍혀 나오는 벌레를 새가 날아와 잡아먹는 장면을 보고 깊은 고뇌속에서 사유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은 지친 나그네의발걸음을 붙들어 매었다.

**부패먹이사슬의 정점

그러나 그곳에 오래 머물 심경은 아니었다. 우리같은 속인으로서는 생명의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뇌는 사치(?)스러울지도 모른다는 느낌때문이었는지모른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은 급박하고 착잡한 것이다.

노전대통령의 '5천억 비자금'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제 우리는 또하나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느껴진다. 끓어 오르던 분노는 점차 서글픔으로 바뀌어가고 서글픔은 차라리 망연자실하게 했으나 이제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신해야 할것 같다.

그동안 성수대교붕괴,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등의세기적 재앙은 부실공사 부실관리의 산물이었고, 그 배후에는 부패의 먹이사슬이 있었으며, 부패의 먹이사슬의 정점에 대통령의 엄청난 권력형비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최고 권력자의 대도행위와 성수대교붕괴 삼풍백화점붕괴 같은 대참사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인과관계를갖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참사앞에 울고 불고, 엄청난 비리앞에 통탄 통분만 할것이 아니라 그 양면을 구조적으로 함께 묶어 생각해 볼 일이다. 이것은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하고 넘어가야 할 차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고뇌하는 사람 없는가

우리사회는 지금 권력과 부패의 먹이사슬에 칭칭 감겨 도처에서 비리와 참사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다시 제2, 제3의참사로 이어지고 5천억 비자금사건은 그 이전 비리의 속편이면서 앞으로 올비리의 전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전대통령개인이야 법대로 삼엄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순환구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데서 결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부패척결의 다음도 부패의 연속이요,대형참사의 다음도 대형참사요, 권위주의의 다음도 권위주의라는 순환구조의극복을 위하여 우리는 분노보다도 더한 사유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순환구조졸업의 역사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가을에, 지옥문앞에 앉아 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생명의 허망앞에 고뇌하는 석가의 '반가사유상'보다 현실의 정치경제적 모순앞에 고뇌하는 사회개혁형 '생각하는 사람'의 상이 보고 싶다.

〈경북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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