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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나는 보통 말하는 순수 음악가가 아니다. 나의 전 인격은 음악이전에한 인간이고 또 인간이 되기전에 한민족으로 태어났다" 민족주의 음악가임을자처한 재독음악가 윤이상씨가 4일 0시40분께(한국시각) 폐렴으로 입원중이던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영면했다. 향년 78세. ▲17세때 일본으로 건너가음악 공부를 하다 동양 음악계의 한계를 느끼고 40세때인 56년 파리 국립음악원에 늦깎이로 입학, 서양 음악의 정수에 접목된 그가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은것은 59년에 열린 독일 '다름슈타트 신음악과정'에서 였다. 그는 이자리서 '프란시스트라미스'의 지휘로 '일곱악기를 위한 음악'으로 열광적인반응을 얻었고 그 이후 예악, 오페라 심청, 첼로 협주곡, 제5교향곡등을 잇따라 발표, 가장 위대한 현대작곡가 5인중의 한사람으로 꼽혔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통영으로 귀향, 반일 무장투쟁을 꾀하다 투옥됐고 5·16군사 쿠데타에 저항했으며 급기야는 동백림사건으로 무기형까지 받았던 격정의음악가. 그는 "나는 정치가도 빨갱이도 아니다. 꽃가마 타고 개선장군 될 생각이 없다. 단지 음악인으로 조국에 기여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89년과 94년에 계획된 방한 일정은 정치적인 이유로 모두 취소, 그토록갈망했던 고향땅을 끝내 다시 못본 것이다. ▲정치적 이유야 어찌됐든 "이국땅의 고달픔속에서도 통영 앞바다의 파도를 연상하면 편히 잠들수 있었다"던한 예술가의 생전의 술회속에서 분단의 아픔을 또한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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