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산

가을 산이 우리를 온몸으로 손짓한다. 성큼 달려들듯 다가선 산 앞에 앉았노라면 산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다. 종일 앉았어도 한마디 말없는 채로앉아 있을 수 있다. 구름이 지나가는 듯하더니 작은 산새가 그 뒤를 좇아 날아간다. 졸졸졸 흐르는 골짜기 물가에 애처로이 홀로 핀 산꽃에 마음을 주고앉았노라면 하도 담담하여 돌아갈 생각마저 잊는다.잠깐 도시생활의 압박을 떠나 어느 작은 산에 가서 앉아 보아라. 홀로 핀이름모를 야생화에서도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보아주든 아니하든 스스로 피고 지는 작은 꽃에서도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런 산이 없다. 가는 곳마다 포장된 길이 나있고, 수 없는 자동차가 실어다 놓는 사람들과 그들이 남기고 가는 소음과 도시의 찌꺼기로 도저히 말없이 앉아 있을 수 없게 한다. 그렇게 아름답던 산도 이제는도시의 연장이 되었고 견디다 못한 산들은 무너지고 있다.

산도 산의 모습을 잃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도 주인의 모습을 잃었다. 명산은 단지 산이 좋아서 명산이 아니라 그 산을 명산이게 하는 명찰이 있어서비로소 명산이고, 명찰은 절이 커서 명찰이 아니라 눈밝은 선지식이 있어서명찰이다. 선지식은 누구인가? 저 깊은 골짜기 시냇가에 애처로이 홀로 핀산꽃의 담담함처럼 허덕이지 않는 가라앉은 마음으로 자신을 관조하는 자를말하는 게 아닐까. 청정한 산이 그립고 눈밝은 선지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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