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이문열·소설가, 세종대교수)-황사영 후예들

*국제사회서의 망신살한국 가톨릭사의 한모퉁이에 보면'황사영백서 사건'이란게 있다. 황사영이란 신도가 북경에 있는 프랑스 함대 사령관에게 편지를 내어 조선왕조의 가톨릭 박해를 고발하고 나름의 대책을 제시하는 글을 썼다가 사전에 발각되어대역죄로 처형당한 일이다.

원문은 지금 교황청에 있는데 그걸 불어로 번역한 뮈텔주교조차'음모의 대부분이 공상적이고 위험천만하다'는 평을 붙였다 하니 내용이 어느 정도인지짐작이 간다. 특히(포교의 자유를 위해)조선을 청에 부속시키고 그 친왕으로하여금 조선을 감독하게 하라고 한 것과 강력한 서양의 군사력을 동원해 전교를 지원하란 부분이 대역죄를 규정했을 것이다.

가톨릭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는지 모르나 그같은 황사영의 행위는 일반인의 감정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신앙의 자유가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라의 주권을 넘기고 이민족의 군사력을 불러들이면서까지 추구되어야하는 것이냐라는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힘을 빌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은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운 듯하다. 어떤 열정에 휘몰리면 설령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나라의 위신과 민족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결과가 오더라도 거리낌 없이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호주 서부의 퍼스시에서 열린 제 62차 국제 펜대회에서도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문인인권'심각 지목

국제 펜본부 구속작가위원회에 의하면 한국은 터키나 일부 중남미국가들과 다름없이 문인들의 인권상황이 심각한 나라로 지목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이 배포한 책자에 따르면 한국에는 지금도 열두명이나 되는 문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감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 책자에 올라있는 순서대로 옮겨 보면 안재구, 장위균, 최진섭, 천경희, 황석영, 황대권,장민성, 김무용, 김낙중, 김삼석, 박장희, 박기평이 된다.

우리 대표들이 너무 과문하고 기억력이 나빠서인지 솔직히 처음 그 명단을봤을때 이름을 알수 있는 사람은 황석영, 김낙중, 박기평뿐이었다. 그것도박기평은 괄호안에 있는 박노해란 필명을 보고난 뒤에야 알아보았다.그러다가 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옥고를 치르고 있는 걸 몰랐다니-하는 자책감에서 그들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니 그중에 몇사람은 요란한 방송이나 신문지면과 함께 그 이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김낙중이란 이름을우리가 특별하게 기억하게된 것과 비슷한 경위를 거친 사람들이었다.문인이란 개념이 어떤 것인지 알수 없지만 그 열두명 중에서 우리의 관념으로 문인에 드는 사람은 황석영과 박기평밖에 없다. 또 펜이 문제삼을 수있는 구속사유는 표현의 자유와 관계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대표에게 따지고 드는품이 수학책을 썼던 과학책을 썼던 글만 썼으면 문인이고,문인은 무조건 구속해서는 안된다는 국제공법이라도 있는 듯했다.*시비같지 않은 '시비'

그렇게 천방지축이다 보니 우리 대표가 오래 애쓸것도 없이 "다만 그 국가보안법이란 것의 오용을걱정해서…"어쩌구 하며 어물어물 후퇴하는 위원회의 논조도 가관이지만 어쨌거나 바다건너 수만리를 날아가서 그런 시비같지않은 시비에 시달려야하는 우리 꼴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가 나중에마음이 풀린 위원회간사에게서 그같은 정보의 발신지를 듣게되자 그 한심한기분은 한층 더했다.

우리는 당연히 그 정보원을 북한이거나 적어도 친북적인 남한의 지하단체쯤으로 알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거명은 않아도 그 간사가 암시한 것은 남한의 당당한 사회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되풀이되어온 황사영의 전통은 거기에도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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