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고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제법 매서운 바람을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우리 모두는 벌써 겨울을 맞이하고 견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여름이 존재의 '밖'을 상징한다면 겨울은 존재의 '안'을 상징한다. 그을린 육신을 자랑하며밖으로 헤매는 여름과는 달리 겨울은 되도록 몸과 마음을 동그랗게 말아쥐고 안으로 파고드는 계절이다. 따뜻하고 외진 영혼의 구석방을 찾아서 홀로 조용히 침잠하는 시간이다. 홀로 있음의 의미, 그것은 물론 처연한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겨울나무와 같은 '당당한'있음이다. 그리고 이 당당한 있음의 바탕은 추위 속에 떨고 있는 자기존재에대한 고통스러운 성찰과 확인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마련된다. 무엇보다도황폐한 세계속에 홀로 유폐된 자아의 쓸쓸하고 왜소한 모습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색이 필요하다.이런 의미에서 박지영의 '서랍속의 여자'는 겨울에 읽기에 적당한 시집이다. 두꺼운 세상의 벽에 갇힌 채 벌거숭이 영혼으로 떠도는 존재의 쓸쓸한내면 풍경을 진실하게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여기 가두었나/굳게 닫힌 문, 벽들은 죄어오고/상자 속의 작은상자, 나를 가두는 인간의 고리"('마음은 허방다리만 놓고' 1연)이처럼 시적 화자(화자)에게 세상은 속이 보이지 않거나, "점점 더 견고한벽이 되고"있으며, 어쩌다 한가한 날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이 시대의 절망을 반액 세일하고 돌아서는 여자들"뿐이다. 그러니 어쩌랴.흙바람 부는 번거로운 세상을 멀리한 채, 깊은 밤 외진 곳에서 쉴 새 없이머리 속에 구멍을 뚫는 혼미한 상념의 '쥐'들을 키우는 고립되고 유폐된 존재로 살 수 밖에. 그리하여 결국 홀로 존재하는 자아의 은밀한 정신 영역을더욱 소상하게 성찰하고, 그것을통해 세상에서 소외된 삶의 숨겨진 의미를보다 명징하게 깨닫는 수밖에. 물론 이러한 성찰과 깨달음은 삶을 포기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비록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잠든 가족의 모습마저도 낯설 때가"있고, 자신까지도 낯설어져 언제나 불안이 솟구치거나 "점점 더 작아지는" 왜소한 모습을 보이긴 해도, 그럴수록 화자의 정신은 늘 깨어 있다. 상투적인 외로움과 슬픔의 먹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함이다. 고독하고 불안할수록 더욱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음, 이것이 바로 박지영 시의 향기이며 미학이다.
〈문학평론가.계명대인문대학장〉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