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중상입은 헌재

공소시효문제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던 5·18헌법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평결선고가 청구인들의 전격적인소취하로 무산됐다. 헌재의 평의내용이 전두환·노태우두전직대통령만 군사반란죄로 처벌할 수 있고, 내란죄는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청구인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가고 있다고 흘러나오자 선고하루전인 어제 소취하를 해 최고의 헌법기관인 헌재가 마치 농락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이같이 선고직전에 청구인들이 평의내용을 입수하고 그 내용이 불만스럽다고 소취하를 한것은 헌재의 기능을 무기력하게 만든, 크게 우려되는 일이아닐 수 없다. 더욱이 정치권이 청구인들의 뒤에서 소취하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은 헌재자체의 무력화보다 더 심각한 '법의 무력화'를 초래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태까지 몰고온 것은 물론 헌재 스스로의 잘못이 큰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헌재는 진행중인 평의내용은 절대 누설해선 안된다. 이것은 법원이 재판내용을 판결전에 누설하면 안되는 것과 똑같은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 5·18헌법 소원에 대한 평의는 8차례를 열면서 막바지에 이른 7차평의때부터 내용이 누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차평의 이튿날 대통령이 5·18특별법제정을 지시하자 평의내용누설은 더욱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8차평의 뒤의 공소시효문제가 알려지면서 누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이번 헌재의 만신창이는 헌재스스로가 원인제공을 한 탓에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헌재가 이처럼 큰 상처를 입게 됐다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 아닐수 없다. 이번의 소취하같은 사태가 앞으로도 재발할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이번의 사태가 나쁜 전례가 돼서 앞으로 누적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헌재는 설 땅을 잃을수 밖에 없을 것이다.

5·18소원의 선고가 무산됐다고 정치권은 특별법제정의 걸림돌이던 공소시효문제가 제거됐다고 환호하고 있지만, 아직도 법제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5·18소원같은 위헌논쟁은 어디까지 헌재같은기속력있는 헌법기관의 결정으로종지부를 찍어야지 정치논리로 풀어가서는안된다. 법의 해석은 법적판단으로 풀지않으면 부작용이 꼬리를 물수밖에 없는 것이 법의 생리인 것이다.

이번 사태는 정부·여당의 책임이 그누구의 것보다도 크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의 특별법제정지시가 헌재평의를 커닝했다는 소리를 듣는가하면, 헌재가 어떤 선고를 내리든지 상관않고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여권의 언행등은 헌재를 무시하는 행태로 보였기때문이다. 지난 88년 9월개소한 이래 약2천6백건 사건을 접수해 82건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헌재가이번에 입은 큰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지 걱정이 아닐수 없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