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씨 할머니는 어때요? 잃었던 손자를 찾았다고 무척 반가워하지요?"경주씨가 묻는다."노망기가 있었수다. 어느 순간 정신이 깜박 나가면 마두도 알아보지 못해요.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알아보구. 참, 마두 아버지는 중학교 생물선생이었대요. 살아 있을땐 존경을 받았는지, 마을 사람들이 마선생은 훌륭한 분이었다고들 말합디다. 데모하다 학교에서 잘리고, 마두 모친이 누이를 데리고 가출하자 술로 몸을 망쳐 죽었나봐요"
"데모하다 잘리다니? 그럼 전교조 출신?"
"뭐, 그런 거겠죠"
"알만 하군요. 그래서 복지원서 테스트할때 시우씨가 동물 이름을 훤히 꿰뚫었군요. 아버지한테 배워서"
나는 점퍼 안주머니를 더듬는다. 아버지 사진이 만저진다. 자주 들여다 보던 사진이다. 나는 슬며시 그 사진을 꺼내든다. 경주씨가 술잔을 들다말고사진 쪽에 눈을 준다. 제가 봐도 될까요 하며 나로부터 사진을 받는다. 사진은 아버지가 책상 위의 식물표본철을 보다 힐끗 얼굴을 돌린 모습이다. 머리카락이 푸스스하다. 구레나룻 시커먼 여윈 얼굴이다.
"시우 아버진 학자시네. 시우씨는 언제부터 이 사진을 넣고 다녀요?""사진요? 고향 갔다 오며"
"요즘 농촌은 젊은이가 죄 떠나고 빈 집도 많다던대. 장씨, 그 싸리골은어때요?"
"추석이라 고향 찾아 사람들이 내려오긴 했지만, 마찬가지죠. 노친들 뿐이구, 빈 집도 있구"
짱구가 소주병을 들고 자기 잔에 술을 따른다. 몇 방울 떨어지다 멈춘다."벌써 바닥이 났네. 술 한 병 더 사와야 되겠는데"
"그럴줄 알았어요. 내가 미리 알고 두 병을 사왔으니깐"
경주씨가 밖으로 나가더니 소주 한병을 들고 들어온다. 나는 술을 마시지않는다. 짱구가 경주씨 잔에 술을 채워준다.
"마두 고향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수?"
"겨울은 닥치는데 이 식구들 데리고 저도 고민이 많아요. 마룻바닥에 스티로폼 깔고 버티지만 겨울엔 그럴 수도 없잖아요. 온돌을 놓던가, 전기장판을구하든가 해야겠죠. 벽도 전혀 보온이 안되니 이대로 겨울을 날 수야 없죠.그러나 이 임시거처인들 계속 빌려 쓸수도 없어요. 여기가 아파트 단지로고시되었거든요. 철거반대 생존권대책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지만 내년 해동되면 철거바람이 불어닥칠 거예요.며칠 전에는 저쪽 비닐하우스에 원인 모를불이 나서 다섯 동이나 타 버렸어요. 연탄과열이란 말도 있고, 철거반의 고의적인 방화란 말도 나돌아요. 만약 이 비닐하우스에 화재라도 발생한다면,모두 장애자들이라 문제가 심각해요. 그래서 영구적인 정착지가 없나하고 물색중에 있어요.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해 이 사람들 받아줄 그 어떤 터도 없긴하지만…"
경주씨가 술잔을 비우고 그 잔을 짱구에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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