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 죽은자와 산자

낮에는 박집사란 분이 김치 한 보시기를 가져온다. 식구들 점심밥을 챙겨준다. 전자밥통에 쌀은 앉치고 설거지까지 하고 돌아간다. 나는 오후에도 아이들과 하우스 안마당에서 논다.동그라미를 그리고 돌며 산토끼 노래를 부른다. 숨박꼭질 놀이도 한다. 나는 수건으로 눈을 가린 술래가 된다. 아이들을 잡으러 다닌다. 나보다 아이들이 더 즐거워한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열심이다. 기성을 지르고 손뼉도 친다. 방안에 엎드려 내다보는 아이들도 재미있어 한다."그 젊은이, 딱 어울리기 놀아주구먼"

두통타령을 하던 노인이 숨바꼭질 구경을 하며 말한다. 두 다리를 못써 변소 출입이 어려운 노인이다. 한 노인은 할머니를 닮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한 노인을 줄곳 한길에 나앉았다. 끼니때만 들어온다. 지린내 나는 바지가늘 축축한다. 벙어리에 가는귀 먹은 노인이다.

숨박꼭질이 한창일 때다. 자원봉사 여대생 둘이 들어온다. 한 여학생은 어제 왔던 처녀다. 둘은 공동수도로 가서 양동이 물을 나른다. 나는 그 일을도운다. 둘은 빨래를 한다. 장애아들을 씻긴다. 방 닦는 일은 나도 도운다.식구들에게 저녁밥을 챙겨 먹이고 두 여대생은 돌아간다.

경주씨가 돌아오기는 밤이 깊어서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걷지 못하는 노인이, 저녁밥 먹었느냐고 경주씨에게 묻는다. 버스정류장에서 풀빵을사먹었다고 경주씨가 대답한다.

"꼬마란 친구는 안 잡히구 졸개만 서넛 엮은 모양입디다"경주씨가 짱구에게 신문을 던져준다. 핸드백에서 꺼내어 휴대폰 충전용 케이스도 넘긴다. 짱구가 휴대폰에 케이스를 꽂는다. 그가 전화질을 시작한다."조심해요. 전화국에서는 전화거는 곳 위치를 안다잖아요"경주씨가 반코트를 벗으며 말한다.

"어디 나까지 수배하겠소. 우린 당한 쪽 피해잔데"

짱구는 몇 차례만에 통화에 성공한다. 사건 뒤 분위기를 묻는다. 어음 할인 문제도 꺼낸다. 통화가 끝나자 금방 전화가 걸려온다.

"박호구나. 넌 용케 토꼈어. 내가 삐삐쳤지. 람보와 형철은 달려들어갔다구? 알았어. 난 입원까지 필요가 없구… 뭐라구, 자살? 언제야, 그게? 정말이야?" 짱구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래, 알았어. 나도 튈거야. 당분간 숨어야지. 제주도쯤 고려하고 있어. 그럼 끊어"

짱구가 나를 본다. 노랗게 질린 얼굴이다.

"두 시간 전에, 채리누나가 경찰서 화장실에서 목을 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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