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황혼의 상념

을해년 해가 저물어 간다. 흘러가는 모든 것은 우리의 기억 저 아늑한 뒤편에 가라앉는다. 또 한세기도 끝나간다. 세기말이다.몸의 눈으로 보면 자연의 황혼이 펼쳐져 있지만, 마음의 눈으로 느끼면 정신의 황혼이 우리 안팎에 드리워진다. 자연의 황혼과 정신의 황혼은 뒤섞여있다. 구별이 어렵다. 우리에게서 그것은 충격이다.

황혼의 색깔과 맛은 무엇일까.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깨쳐야 하는가. 우선 황혼의 색깔은 도대체 선명하지가 않다. 분명히 붉은 것도 아니고, 푸른 것도 아니다.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다. 보는대로 보일 뿐이다. 황혼이 찾아올때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그 색깔을 나름대로 보게 할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황혼의 빛깔은 잿빛이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희뿌연 연기처럼, 그것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이미지를 뿌리고 있다. 희망이냐절망이냐는 당신들의 결단에 달려 있노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해 저무는 때의색깔은 그러하다. 해 저무는 때의 사람들은 홀로인 채다. 넘어가는 해에 미적(미적)으로 도취되어 있는 이도 있지만 빠져 나가는 세월에 고통스러워 하는 이도 있다. 사람들은 서로 잘 어우러지질 못한다. 서로 어우러질 줄 모르니 제대로 혼자 있지도 못한다. 황혼의 때에 이렇듯 공동체의삶은 허무스럽다. 윤리나 도덕을 외치는 소리는 아스라히 희미할 뿐이고, 오히려 예술이나아름다움에의 관조를 호소하는 소리는 조금씩 크게 들린다. 그래서 황혼은새로운 공동체를 암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해저무는 때에 사람들은 무언가 잊어보려고 몸부림 치기도 한다. 손톱으로해를 가리려는 것이다. 세기말이우리에게 던지는 커다란 충격과 물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잠시 망각하려고 급급해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직(정직)일 수 없다. 정직한 자만이 새로운 해를 기쁨으로 맞이 할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진정한 힘은 정직에서 비로소 흘러나올듯 하다.〈돈보스꼬예술대학 조교수·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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